부러운 개처럼

by 이로

오전 11시, 간신히 눈을 떴다.

어제저녁 넷플릭스 정주행 하다가 새벽 늦게 잠들었더니 영 몸이 찌뿌둥하다.

'주말인데 이대로 괜찮은가' 싶어 거실로 나갔다.

거기엔 우리 집 강아지, '콩이'가 대자로 뻗어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볕 좋은 거실 한가운데서 세상모르고 자는 모습.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개팔자가 상팔자다."

평생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달려온 우리 인생과 비교하면,

저 근심 하나 없는 얼굴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걱정도, 두려움도, 고민도 없이 그저 세상 편한 저 모습. 우리도 저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평화로운 '팔자'는 어쩌면 그저 주어진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콩이 스스로가 매 순간 내리는 위대한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

콩이, 너, 혹시 철학견이니?


인간에게는 두 개의 짐 가방이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어떤가.

마음속에 늘 커다란 짐 가방을 두 개씩 들고 다닌다.

하나는 과거 가방.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로 가득 찼다.

다른 하나는 미래 가방.

'나중에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빵빵하다.

이 두 가방 때문에 어깨가 항상 무겁다.

밥을 먹으면서도 밀린 팀플 과제를 걱정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오지도 않은 내일의 알바 걱정에 뒤척인다.

마음이 단 한순간도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 사이를 위태롭게 시소 타듯 오간다.

이런 걸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던가.


강아지는 오늘의 햇볕을 즐긴다

하지만 강아지의 삶을 보라.

콩이에겐 어제의 꾸중도, 내일의 동물 병원 예약도 없다.

주인이 공을 던져주면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달린다.

마치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면 그 온기를 온몸으로 만끽한다.

주면 주는 대로 감사히 받고,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미련 없이 돌아선다.

되면 되는 것이고, 안 되면 그만인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그저 담백하게,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응, 그래서 뭐?' 하는 쿨함이랄까.

평생 우리는 더하기와 곱하기의 삶을 살아왔다.

학점 더 많이 받고, 스펙 더 쌓고, 취업 더 빨리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빼기와 나누기에는 영 서툴러졌다.

어깨의 힘을 빼는 법, 마음의 기대를 나누는 법을 잊고 살았다.

뺄셈, 나눗셈은 초딩 때 배우는 건데 말이다.


선택의 문제, 그리고 개처럼 사는 지혜

이 나이쯤 되면 굳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고, 세월이 우리에게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다.

'개팔자 상팔자'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를 한번 흉내 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하루, '걱정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기'를 결심해 보는 것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듯, 오늘 내 마음의 상태를 내가 직접 고르는 것이다.

'나 오늘 행복하기로 선택했어!'라고 외치는 거지.

따뜻한 레몬차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 보고,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지 뭐' 하는 너털웃음 한번 지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상팔자'의 시작이다.

우리가 개가 될 수는 없지만, 개의 지혜를 빌려올 수는 있다.

근심 없이 햇볕을 즐기는 그 담대함을, 현재에 충실한 그 위대한 단순함을.

오늘, 나는 가장 볕 좋은 자리에 누워 평화롭게 잠든 콩이의 선택을 한번 따라 해 볼 것이다.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살자'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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