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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Jan 09. 2023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국어 수업

수업나누기&정보더하기 / 김미정_금천고


  2022년 8월의 여름방학, 사라져가는 동물과 지나친 육식주의의 문제점, 반복되는 재난을 그린 작품들을 우리 학교 학생들과 함께 읽으며 여름을 나고 있었다. 그 뜨겁던 여름, 갑작스럽게 닥쳐온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를 우리는 잊지 못하게 되었다. 강남의 비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둥둥 떠오른 고급 승용차 사진과 범람하는 하천물로 인해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온 가족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반지하 가족들의 기사를 동시에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수도권의 폭우로 인한 수해였으나, 결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지막 수업 시간, ‘기억하는 소설’의 ‘몰(mall)’을 읽다가 오열하는 주인공 청년의 마음에 그대로 이입이 되어 버렸다. 열세 살 때 서울에서 겪은 수해가 떠올랐고, 홀로 살아남은 할머니에게 보낸 열세 살 손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 생존과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는 곧 기후 불의, 기후 불평등임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동료 셋의 만남, 그리고 시작


  2020년 지금의 학교로 온 첫해, 아이들과 즐겁게 플로깅(plogging,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 그림책을 만들고, 온몸으로 춤을 추며 뜨겁게 살아가는 체육과 동료 교사를 만났다. 이제는 모른 척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해 “함께 하자”고 선뜻 손을 내밀었다. 비슷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둔 또 다른 영어과 동료 교사와 셋이 뭉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021년, 마음이 맞는 세 명의 동료가 모이니 힘이 났다. 게다가 아무도 우리에게 업무로 옥죄지 않으니,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볼 수 있을 듯 의욕이 마구 샘솟기까지 했다. 마침 단재교육원에서 진행한 미래 교육 연수에서 기후 위기를 주제로 좋은 강연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탄소중립과 그린뉴딜(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뜻하는 말로, 현재 화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등 저탄소 경제구조로 전환하면서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정책), 탈성장, 육식주의, 기후 위기 극복의 열쇠라 불리는 채식, 인권과 기후정의 등 새롭게 알아가고 깨우쳐가는 배움의 기쁨이 꽤 컸다.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연수를 듣고, 틈만 나면 머리를 맞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작년 한 해, 세 가지 활동을 시도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학생실천단 그린 리더: 학생실천단를 구성하여(창체 동아리를 만드는 데 실패하여 실천단을 만들었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의식한(?) 아이들 60여 명이 대거 가입했다) 지구의 날, 바다의 날, 생물다양성의 날 등에 각종 환경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부서별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했다. 세미나, 홍보 및 캠페인, 자원순환 배출에 접목한 디자인 등 여러 부서 활동을 기획했으나 예상보다 너무나 거대한 조직이 돼버렸고, 주도적인 학생 그룹을 만드는 데 실패하여 교사 주도의 활동이 되었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 영화 상영회 채식 캠프 : 우리 안의 육식주의를 일깨워주는 독립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상영회를 열고, 갖가지 채식 재료로 모둠별 채식 요리 한마당을 진행했다. 학교 바로 앞에 자연드림과 한살림 매장이 있어 채식 메뉴 선정과 재료 구입, 레시피 탐색까지 학생들이 스스로 진행했다. 학생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채식 요리를 완성하여 즐겁게 시식해본 경험을 공유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었으나, 행사가 방학식 날 이루어져 실천단 학생들 참여가 저조했던 점, 독립영화 시사회 때 조는 친구들이 많았던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구력’ 교과 융합 프로젝트 수업 :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 만나고 싶어 우리 학교에서 매년 이루어지는 교과 융합 프로젝트 수업의 한 팀으로 참여했다. 우리 개인의 지구력, 지구의 기후 복원력인 지구력을 기르자는 중의적 의미의 ‘지구력’ 프로젝트 융합 수업 흐름은 아래와 같다. 국어, 체육, 영어과 교사가 모여 거짓말 좀 보태 일 년 내내 이 10차시 수업을 기획하여 운영했으나, 참여 학생이 단 8명에 그쳤다. 학생들의 희망 진로와 연계된 과학 중점, 사회 중점 교과 융합 프로젝트 수업에 밀린 것이다. 그러나 충북기후 위기비상행동 대표님과 함께 우리 학교 탄소 배출량을 직접 계산해보며 에너지, 먹거리, 자원순환 세 분야에서 2022년의 우리 학교 탄소 감축 방안을 탐구해본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때 참여한 서너 명의 친구들이 모여 2022년 기후환경동아리를 만들었다.


특별한 국어 수업 2, ‘국어 시간에 기후 위기 공부하기’

  2022년, 우리의 든든한 동료 체육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게 되었고, 교과 융합 수업의 쓰라린 실패를 맛보며 보다 일상적인 교과수업에서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에서 혼자 외롭게 부르짖지 말고, 일상과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었다. 더 이상 교사인 내가 기후 위기 운동의 주체가 되지 말고, 학생들이 주체가 되도록 돕고 싶었다.

  역설적으로 교육부 탄소중립 학교로 선정이 된 2022년 올해,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교육활동의 방향이 기후 위기가 아닌 ‘탄소중립’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실은 작년 프로젝트 수업의 방향 역시 그런 한계를 갖고 있었다. 각 교과 시간에 공학적,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기후 위기 문제해결 접근 방식과 개인의 실천에 머무르도록 짠 프레임을 접하면서 오히려 이것들이 아이들의 배움과 실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내 고민되었다. 그렇다면, 국어 시간에 기후 위기와 우리의 삶에 대해 함께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토의와 토론 활동으로 연결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 수업 공개를 맞아 동 학년 선생님들과 1학년 토의토론 수업을 아래와 같이 기획해 진행했다.



 최원형 선생님이 쓰신 ‘착한 소비는 없다’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고 이 책은 딱 국어 시간 읽기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 학년 선생님들과 패스트 패션, 기후 위기와 내전, 자연 산불, 과잉 육식, 동물권 등 여섯 가지 자료를 뽑아 디지털 문서화 하여 ‘모둠별 읽기 활동-관련 미디어 자료 검색-발표 활동’ 등의 2차시 수업을 진행했다. 실은, 기후 위기를 가져온 현대 자본주의의 과도한 성장과 생산 및 소비를 화두로 삼아보고 싶어 우리의 일상적 소비 패턴에 주목했으나, 학생들은 결국 또 개인적 실천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개인적 실천이 필요 없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매우 어렵게 느껴 자주 개인적 실천으로 회피해버리고 만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아쉬움을 안고, 다섯 개의 토론 논제 중 한 가지를 선정하여 자료 조사 후 입론서를 작성하는 수행평가와 연결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평가 후 시간이 되는 학급에서는 약식으로 토론을 진행하였으나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진 못했다. 토론 학습지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2022년 특별한 국어 수업 2 ‘국어 시간에 기후 위기 공부하기’ 토의토론 수업 학습지
‘기후 위기로 찬반 토론을’ 학습지 중 일부


  마침 올해 1학기 즈음, 충북기후위기교사모임을 결성해 매달 수다회를 진행하며 사례를 나누어주고, 더 넓은 시야로 기후 위기 운동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고마운 김○○ 선생님을 만났다. 이를 통해 ‘탄소 사회의 종말’, ‘기후정의’라는 책에서 읽은 ‘기후정의’가 책 속에 머물지 않고, 2022년 전 세계 기후 행동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9월의 기후정의 행진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기후 위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권, 민주시민의 실천 영역에서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준비와 집회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비록 많은 학생이 함께하진 못했지만, 청소년 기후활동가가 되어 보겠다는 학생들과 9월 기후정의 행진에도 함께 참여했다.(3만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파란 하늘 아래 ‘다이 인(Die-In)’(‘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으로 일정 시간 드러누워서 펼치는 비폭력 시위를 말한다.) 퍼포먼스를 드디어 해보았다!) 마침 수업량 유연화의 일환으로 2학기 11월 초, 우리 학교에서는 ‘기후 위기’ 및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전 교과의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했다. 정규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이번 기회에 기후정의를 주제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엄청 고민하다가 아래와 같이 수업계획을 세웠다. (환경교육센터에서 제작한 ‘기후 위기 대응 교재(고등학교 편)’을 활용하였다. 훌륭한 활동자료가 매우 잘 정리되어 있어 강력 추천한다!)



생태 시민으로 더불어 살기


  미리 고백하자면, 1, 2학년 전 교과 교사가 참여하는 교과 융합 수업이다 보니, 뒤늦게 부랴부랴 옆 짝꿍 미술 선생님을 섭외하여 국어-미술로 융합을 하게 되었다. 수업 주제나 활동 방향에 맞게 교과를 융합해야 하는데, 교과 융합을 먼저 정하고 활동 내용을 거꾸로 정하게 된 셈이다. 다음부턴 순서를 제대로 밟아 교과 융합 수업, 주제 융합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 교과에서 창작할 수 있는 소재로 손 휴지나 손 건조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생태 손수건 제작을 구상하게 되었고, 학교 숲에 사는 고양이부터 풀, 꽃, 나무, 하늘 등 다양한 생명체를 손수건에 담아보며 바쁜 일상 중에 잠시 가을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마침 교과 융합 수업 일주일 전에는 기후환경동아리 학생들 주축으로 국립생태원 체험학습도 다녀왔다. 고라니와 담비, 바다도 보고, 지구 공동체 곳곳의 기후를 간접 체험해보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국어 교과의 읽기, 말하기와 연결하여 전 세계 기후 행동을 촉발한 금요 파업의 주인공인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문을 제재로 활동해보며, 기후정의와 청소년 기후 행동을 탐구하고 성찰해보았다. 연설문 작성 활동을 하며, 생각보다 그레타 툰베리를 알고 있는 학생들이 적어서 놀랐다. 학생들은 그레타 툰베리보다 오히려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기후소송도 제기하고, 청소년 기후 행동도 벌인 것에 더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글을 쓰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기후 위기’와 ‘기후정의’를 성찰해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유네스코는 기후 행동에 관한 학교용 지침서(2017)’에서 지속가능발전과 기후 행동을 위한 교육의 지침으로 ‘2. 모든 과목에서 기후변화를 가르칠 것-국어 시간에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소통 기술을 연습한다.’를 내놓았다. 선생님들과 지침서를 함께 읽으며, 우리 국어과에서는 바로 이런 것을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소통할 수 있으려면 먼저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성찰했으면, 바로 말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국어 수업이 그 초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기후 위기와 불평등을 자기 삶의 핵심적인 문제와 배움의 주된 방향으로 삼아(그러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니면 배움의 한 경험으로라도 삼아) 친구들과 함께 탐구하고 성찰하며, 세상에 힘있게 외치고 실천하는, 생태 시민으로 더불어 살 수 있기를 꿈꾼다.


피난처 만들기


  앞으로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할 일도 피난처 만들기다. 피난처에 거(居)하기야말로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일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가혹한 인간 조건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어디선가 힘을 얻어야 한다. 존중받아야 한다. 

  피난처에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한다. ‘사랑하는 ○○과 함께 살기’가 삶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면 ‘○○’에는 인간뿐 아니라 개, 화분, 나무, 제비, 돌고래, 책, 태양, 바다 등 온갖 비인간이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피난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파괴당하는 것에 대해 같이 욕하고 저항하는 장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더 나쁜 것과 바꿀 필요가 없다. 굳이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피난처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모인 곳이다. 피난처는 계속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곳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든 돈으로 환원하고 마는 세계에 저항하고 인간성을 하찮게 만드는 세계에 저항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훨씬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재창조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같이 그렇게 된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는 서로 꿈의 세계를 만들고 나눈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중에서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정혜윤의 책을 읽고 ‘피난처’가 이토록 따뜻하고 힘 있는 곳일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현실과 꿈의 괴리가 크게 느껴질 때, 현재와 미래가 두렵고 불안해질 때, 용기가 필요해질 때 이 구절을 찾아 읽는다. 비록 기후 위기와 불평등에 맞서 함께 싸우다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더라도, 인간성을 지키며 훨씬 마음에 드는 나로 재창조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함께 살 수 있다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 한다.




2022 겨울호 목차

들어가는글_2022 새넷 겨울
1. 시론
2. 이슈 & 포럼
3. 특집
4. 전국넷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
7. 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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