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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Aug 07. 2023

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시론 / 김찬호_성공회대 교육대학원

  얼마 전 어둑해진 밤에 동네의 어느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가 본 광경이다. 자그마한 농구 코트 바닥에 두 명의 남자아이들이 앉아 있는데, 경비원이 와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의 어느 주민이 왜 늦은 시간에 아이들이 거기에 있느냐고 민원을 넣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냥 농구를 하고 나서 조용히 쉬고 있었을 뿐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막연히 그들을 불온시하면서 경비실에 퇴거 조치를 요구했다.


  <노키즈 존> 현상에서 드러나듯이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바탕에는 어떤 마음이 깔려 있을까. 희박해진 존재감과 그로 인한 불안이 아닐까 싶다. 정보가 폭주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인정 욕구는 불쑥불쑥 커지는데,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 경로는 점점 줄어든다. 끊임없는 비교 속에 자아는 자꾸만 왜소해지고 사소한 것들에 주눅이 들기 일쑤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번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바로 소비자의 자리에 설 때다. 종업원이나 텔레마케터 등 감정노동자들에게 갑질하는 이들은 평생 어떤 콤플렉스에 젖어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힘이 점점 커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구매력은 엄청난 권력을 수반한다. 다른 곳에서 기죽어 사는 사람도 고객이 되는 순간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은 설 자리가 없다.


  교사들이 막무가내 민원에 시달리는 상황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사교육을 시키면서 소비자의 입장으로 교사를 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고객이 왕’이라고 생각하며 교사 앞에 자연스럽게 군림하게 된다. 교직을 서비스업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격이 미성숙한 일부 부모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억지를 부린다. 유아적 만능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치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 자녀에 대한 소유욕을 애정이라고 착각하는 일체화 환상, 자신과 자기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백 환상이 그 아래 깔려 있다. 이른바 몬스터 페어런트는 그런 유치한 에고로 무장한 이들이다.


  교사에게 갑질하는 부모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기를 혐오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남에게도 함부로 한다. 자녀가 그런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고, 부모 자신이 그 불손함의 일차적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 부모들은 자신이 노후에 자녀로부터 존중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니, 이미 부모 자녀 관계는 상당히 도구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들은 그런 부모들에게서 상처를 덜 받도록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야 한다. 학부모가 당신을 비난하거나 모욕할 때, 무심코 자신도 거기에 가세하여 비난과 모욕을 증폭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자책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하고, 아울러 체력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대응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고립된 환경에서는 쉽게 번아웃된다. 서로 보살피는 문화가 절실하다. 교사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부딪히는 난감함이 담담하게 토로되고 깊게 경청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열려야 한다. 교원학습공동체 같은 모임을 통해 신뢰와 우애를 다지며, 힘든 일을 기꺼이 나누고 동료들끼리 격려와 응원이 이뤄지는 기풍이 조성되어야 한다. 특히 신참 교사들에게 어려운 업무가 몰리지 않도록 유념해야 하고, 그들의 적응에 선배 교사들의 세심한 멘토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 원활한 팀웍이 작동할 때 수업이나 생활 지도에 빈 구멍도 줄어들고, 그것은 민원이 발생할 소지를 근원적으로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되는 여러 가지 시스템도 공동체적 풍토 속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부모 민원이 교사에게 곧바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걸러내는 장치를 운영한다고 할 때, 결국 누군가는 직접 대응해야 한다. 몇몇 사람이 독박을 쓰지 않으려면 기계적인 역할 분담이 아니라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상담 교사를 따로 두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는 아이를 그쪽에 넘기고 담임은 나 몰라라 한다면 생활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지금 부실해진 한국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위치하고 있다. 교사들은 거대한 관료조직의 말단에서 부조리한 세상의 결과물들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그 막막함과 처절함을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대로 방치하면 돌봄과 교육은 붕괴되어버릴 것이라고, 아니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이제 지속 가능한 교육의 길을 탐색해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교사들이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와 부모 그리고 사회가 손을 잡아야 한다.



2023 여름 호 목차

들어가는글_2023 새넷 여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넷
5.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6. 티처뷰
7. 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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