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하게 첫눈 만나기

나타나고 멈추고 사라진다

by 김작가

첫눈이 내린다. 눈발이 흐드러져서 잠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기 명상한다.

신나게 춤이라도 추는 듯하던 눈발은 금새 사그라든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물기 가득한 첫눈이 내린다. 나무에도 바닥에도 하얀 눈은 쌓이지 않는다. 사그라들어서 잘 보이지 않던 눈이 ‘나 아직 여기 있소’ 하며 다시 하얀 눈을 보여준다. 눈발이 흐드러져서 내 마음과 몸이 눈만 보였었는데 어느새 사라졌다가 또다시 나타난다. 몸의 통증도 나타났다가 멈추고 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감정의 부대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통증이나 부대낌이 전부인 것 같아서 괴로운데 잘 들여다보면 통증의 강도가 계속 변화한다. 나는 그저 그 순간에 주의를 모으고 ‘그렇구나’ 바라보면 된다.


아침 9시인데 집안이 어둑하다. 밖에 짙은 회색 구름이 가득해서 빛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첫눈을 바라보기 위해 집안의 불을 모두 껐다. 내가 지금 명상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이렇게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숨 쉬고 있다. 고요하다.


올겨울 처음 내리는 눈이 반갑다. 눈은 내려야 할 조건, 즉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조건이 갖추어져서 내릴 뿐이겠지만 ‘첫눈’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스럽다. 얼음의 결정체가 땅으로 떨어지며 폭신한 느낌의 하얀색으로 흩날릴 때 미워할 수가 없다.


눈이 내리니 겨울이다. 첫눈이 반갑지만 설레지는 않는다. 첫눈이 내려서 설렌다고 입으로 말하면 감정을 오버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매사에 무뎌지는 ‘나이 듦’의 증거일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덤덤함' 같다.


첫눈을 덤덤하게 맞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대해서도 덤덤해지고 있다. 아팠던 기억이 모두 사라져서가 아니다. 다시 그 순간을 산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수 없어서다. 멋지게 전혀 다른 삶으로 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더 잘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에 대해 ‘그랬구나’ 받아들인다. 자꾸 받아들이다 보니 덤덤해진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 중에는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 수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상처 입었던 나를,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을 다 용서하고 싶다.


‘첫눈’이라는 이름은 사랑스럽지만 '눈길', ‘빙판길’은 불편한 이름이다. 내 기억 속의 많은 경험을 어떤 이름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슬픔이나 분노가 되기도 하고 기쁨과 행복이 되기도 한다. 덤덤하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감정에 묶여 있는 것이 괴로움이구나 싶다. 어떤 감정도 계속 그 상태에 머물지 않는데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면 내 스스로를 공격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화날 때 화난다고 계속 말하기 싫다. 말로 화나는 감정을 붙잡게 되기 때문이다. 화가 난 상태를 지켜보고 내가 그 감정을 수용하고 놔주면 될 뿐이다. 이런 연습을 자꾸 하다 보니 덤덤해진다.


짙은 회색빛이 점차 사라지고 밝은 빛이 들기 시작한다. 물기 머금은 첫눈도 사라졌다. 창문을 여니 찬 기운이 훅 들어온다. 겨울이다. 겨울답게 따뜻한 옷을 입고 따뜻하게 난방해야겠다. 잎을 떨구고 잔가지마저 다 드러낸 나무에 물방울이 맺혔다. 물기 가득한 첫눈의 흔적이다. 잔가지마다 영글영글하게 맺힌 물방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첫눈이 내리다 멈추고 그 눈을 맞이하던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도 사라지며 계속 변화하는 세상의 장면을 바라본다. 나타나고, 멈추고, 사라진다. 호흡이 들어오고 멈추고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듯 덤덤하게 첫눈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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