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내가 된 날들 07.같이 버틴 시간

기차안에서 맞이한 Ftour(라마단의 저녁)

by Jin Young Park Nomade


기차 안이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로 가득 찬 객실인데도

수다도 웃음도 없고, 고요가 있을 뿐이다.


평소 같으면

달콤한 과자와 시원한 음료를 싣고 가던 판매 카트도

오늘은 지나가지 않는다.


마치 오아시스를 찾는 캐라반의 고통처럼

창밖에 비치는 해는 너무 뜨겁고

입안의 공기는 너무 메말랐다.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날의 기차는 평소와 전혀 다른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이었다.




라마단은 흔히

‘단식을 하는 고행의 달’로 알려져 있다.


단식이 물론 주가 되는 기간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멀리 있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조금은 들뜬 명절 같은 시간의 의미가 강하다.


귀성 행렬이 이어지는 이 시기의 기차표는

하늘의 별 따기다.


단식을 해야 하는데다가

기차표도 구하기 힘든 이 시기...

웬만하면 이 시기에 여행은 피하고 싶었건만.


하필 이 시기에 카사블랑카에 갈 일이 생겼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렵게 기차표를 구했다.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평소에는 외국인에게 꽤 관대한 나라다.


대형 마트에는 이슬람에서 금기시되는

돼지고기도 팔리고,

술을 파는 가게도 있다.

외국인이 술을 마시거나 조금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도,

대놓고 눈치를 주는 분위기도 아니다.


하지만 라마단만큼은 조금 다르다.


이 달은 단순한 금식 기간이 아니라

성스러운 시간이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규율은 조금 더 엄격해진다.


나도 라마단 시기만큼은,

길 밖에서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무슬림 여부를 떠나서,

이를테면 다이어트 중인 친구 앞에서

혼자 맛있게 밥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어색한 일 아닌가?


그래서 이 시기에는 외국인들도 자연스레 밖에서는 음식을 자제하는 편이다.


나도,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서기 전

평소보다 더 든든히 먹고,

목도 충분히 축인 후,

가방 안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무슴멘 몇 조각을 조용히 챙겼다.


앞으로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너다섯 시간.

심지어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긴장되었다.




기차는 만석이었다.


하지만 사람 수에 비하면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배가 고프면

사람은 말수가 줄어든다.


어떤 이들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어떤 이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마치 모두가

체내 절전 모드로 전환된 듯한 분위기였다.


따뜻해져가는 햇빛 아래

목마름을 잊어보기 위해,

나도 그 흐름에 섞여

창문에 고개를 기대고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드디어 해가 졌다.

단식이 끝나는 Ftour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홀로 맞이하는 Ftour이라니...

좀 섭섭한걸?"


Ftour은 가족이나 친구와 모여 앉아

다 같이 즐기는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승무원이 작은 물병과 대추야자를 나눠주었다.


ftour.png 조용했던 기차가 따뜻해지던 순간


나는 무슬림도 아니었고,

엄밀히 말하면 단식 중도 아니었지만,

그 작은 물 한 병과 대추야자에

이상하게 고마운 마음이 차올랐다.


다 식어버린 무슴멘으로 Ftour를 대신하려고 했던 나에게,

“이 시간, 같이 버텼다. 잘했어”

라고 누군가 조용히 토닥여 주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아단이 울리고,

Ftour 시간이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조용하던 기차 안이

갑자기 작은 축제처럼 따뜻해졌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방이 열리고,

빵이 나오고,

대추야자와 과일, 과자가 꺼내졌다.


낯선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음식을 건넨다.


나는 가져온 무슴멘을 꺼내

옆자리 가족에게 건넸다.


그들도 나에게 음식을 내밀었다.


열차의 작은 테이블 안에서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저녁을 함께 했다.


여행 중에 기차 안에서 맞이한 Ftour.


삭막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에서 혼자 맞이하는 Ftour보다

활기차고 따뜻했다.




배도 고팠다.


하지만 그날 기차 안에서 더 크게 느껴진 건

배고픔이 아니라

‘함께 기다렸다는 감각’이었다.


라마단 기간 동안

동네 모스크에서는

이 시기에 누구든 저녁 식사를 나눠준다.


가정집에서도

혼자 있는 이웃을 초대해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는다.


마치 "누구 하나도 배고픈 이 없게 하리라"라고 선언한 것처럼...


라마단은 단식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함께 버티고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도

서로 모르는 얼굴을 마주하고도

자연스럽게 가방을 열어

웃음과 음식을 건네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각자였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서는

아무도 혼자는 없었고

누구도 배고프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식탁을 쓰는 사람들이 되어

배고픔의 시간을 함께 이겨낸 것을 축복하였다.


기차 여행을 통해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

그날의 라마단은

배고픔이 아니라

함께 버틴 시간으로 남았다.


생소했던 남의 나라 명절 라마단이,

이날만큼은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다.



✦ 각주

이프타르(Ftour/Iftar) — 라마단 기간, 해가 진 뒤 단식을 깨는 저녁 시간.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며 하루의 기다림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무슴멘(Msemen) — 모로코에서 흔히 먹는 납작한 밀가루 빵. 겹겹이 접어 구워내 쫄깃하고 고소하며, 꿀이나 버터를 곁들여 아침이나 간식으로 먹는다.

대추야자 — 라마단에서 단식을 풀 때 가장 먼저 먹는 과일. 전통적으로 물과 함께 먹으며 하루의 금식을 부드럽게 시작한다.



✦ 〈모로코에서 내가 된 날들〉 시리즈

01. 인생을 되찾아준 향기

02. 구글맵으로 갈 수 없는 카페

03. 내 가게를 지켜줘

04. 마라케시에서 몸을 맡기다

05. 도로 위 요지경

06. 원하는 곳에 갈 수 없는

07. 같이 버틴 시간

08. 카펫 앞에서 무너진 나—2026.04.07 19:00(KST)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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