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맺을 결에 혼인할 혼. 결혼의 사전 뜻: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내가 아는 세상이 그 전부일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결혼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당연한 나의 미래였다.
신랑은 누가 될지 종종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1월 20일이었던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꿈에서 미래의 남편을 볼 수 있다고 한 날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날 밤 흐릿한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엔 꿈속의 희미한 얼굴을 애써 찾아보려고 하루종일 꿈을 곱씹어보았다. 몇 해 동안 그날이 오면 꿈을 꾸지 못했는데 딱 한번 꿈을 꾸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 내가 도와주니 씩 미소를 지어주던 어떤 남자. 최대한 그 얼굴을 기억해 내기 위해 꿈속의 기억을 더듬었고 연예인 김재원이 떠올랐다. 그처럼 얼굴이 하얗고 미소가 예쁜 사람이 내 남편이 될 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어이없는 이야기이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명절에 할머니는 나보고 “키만 멀대 같이 커가지고 머시매 같이 뛰어다니는데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라고 애정 어리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잔소리를 해댔다. 그럴 때면 나는 “시집 안 갈 건데”라고 선수를 쳤다. “못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안 갈 거야!” 그렇게 한 소리를 쳐놓고도 할머니의 말이 내심 신경 쓰였는지 뛰어다니는 걸 멈추고 엄마 옆에 앉아 최대한 조신한 척 전 붙이는 걸 도왔다. 그 꼬맹이도 결혼은 하고 싶었나 보다.
여고 재학 시절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수업 도중 대뜸 한 여선생님은 “너네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소용없어. 공부를 못해도 얼굴만 예쁘면 시집 잘 가서 성공할 거니까”라고 진리인양 말했다. 한편으론 씁쓸한 표정으로. 난 이쁜 얼굴로 성공할 위인은 아니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왜 갑자기 그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 말은 뇌리에 박혀 낡고 썩어빠진 생각에 사로잡히게 했다. ‘과연 나는 공부로 성공할까? 시집을 잘 가서 성공할까?’ 그 당시 취집이란 단어는 없었지만 시집을 잘 가서 성공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도 성공지향적 사회에 살고 있었기에 난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었다. 그 여선생님이 한 말은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
결혼에 대한 마지막 일화는 쓰기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그건 바로 내가 인터넷 소설 주인공 이름들을 보며 미래의 아이들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무려 세 아이를 낳아 ‘오늘’, ‘하루’, ‘맑음’으로 이름을 짓겠노라 정했으며 어떤 성이 이 이름들과 잘 어울릴지 고민했다. 17세의 나는 참 패기가 넘쳐흘렀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당연한 생각을 가지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