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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Nov 21. 2022

편지를 쓰다

부자의  마음

 

 북클럽에서, ‘가을 펜팔: 동네 산책’이라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펜팔 친구를 위한 추천 도서 리스트를 작성하고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내가 좋아하는 책 그리고 가을이면 생각나는 것 등을 엽서에 적어 보내는 행사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그러나 분명 책 읽기를 좋아하는 누군가로부터 손 편지를 받는 일은 자못 신선한 느낌이었다. 지난해 가을 펜팔 친구는 부산에 사는 젊은 직장인이었다. 그 인연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젊은이들의 최근 독서 취향과 생각을 알아가는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개인적으로 편지 쓰기를 좋아한다. 이제는 손 편지를 쓰는 일이 흔하지 않게 되었지만, 카드나 이메일은 자주 보내는 편이다. 친구들은 카톡이 편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카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즉답이 오고 가는 편리함은 있지만 왠지 내 마음속 말이 허공에 노출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카드나 이메일도 손 편지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쓰는 동안 오롯이 상대방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좋다. 꼭 답장을 기대하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의 기다림도 좋아한다. 답신이 늦으면 늦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을 전했을 때의 감정을 되새겨보는 일, 또한 좋다.     

 

 나는 아직도 많은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 특히 50년 전에 받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편지, 대학 후배가 보낸 편지, 20대에 제자들로부터 받은 편지, 가족으로부터 받은 편지들이다. 자칭 나의 ‘보물상자’라 부르기도 하는 네모 상자에 차곡차곡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거주로 살림살이며 가구들은 대부분 처분하고 버렸음에도 이 편지 상자와 책들은 몇 번의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까지 자리를 지켜준 삶의 흔적들이다. 우편엽서, 카드, 항공 엽서, 예쁜 편지지에 저마다의 글씨체로 마음을 보내온 손 편지들. 더러는 너덜거리기도 하고 봉투는 어디론가 사라져 알맹이만 남아있는 편지들도 있다.      

 

 별을 좋아하는 소녀라고 소개하며 강의를 듣던 현희, 방학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것이라 했다. 별을 찾아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도 들고 건강한 육체를 위해 태권도를 배우고 세계와 발맞추기 위해 E.C.C.에도 들 예정이라 했다. 그가 보내온 은하 사진에는 ‘제가 별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이 너무 멀리 있어 한없이 쳐다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그의 편지를 읽으며 문득 최근 관심 있게 읽었던 마이클 콜린스 우주비행사의 <달로 가는 길>과 심채경 천문학자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특히 ‘천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만 가지 방법이 있다’라는 심채경 행성 과학자의 글을 공감하며 읽었다.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달과 별을 감상적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요즘은 하늘, 자연, 우주를 하나로 어우르며 조금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본다. 별을 좋아했던 현희는 우주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었을까?     


 편지 봉투에 붙인 우표를 보니 시류의 흐름도 엿보인다. 꽃 그림, 새 그림에 청자나 백자. 그런가 하면 우표 한 장 대신 여러 장을 모양내서 붙이기도 했다. 우푯값도 세월 따라 10원이 20원 되고 어느새 110원 되다 지금은 430원이 되었다. 50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은 물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우푯값이 오른다 해도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해주는 직원이나 집배원의 노동에 비하면 결코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젊은 날 편지는 우리에게 낭만과 그리움을 대신해 주던 메신저였다. 사랑한다는 말은 유치하다며 연시戀詩를 적어 보내기도 했고, 헤어지자는 말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이별의 시로 대신하기도 했다. 주고받은 편지에는 즐겁고 다정한 이야기와 안타깝고 아쉬운 사연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이제는 아득한 추억 속의 장면이 되어버린 소중한 인연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해진다.


 오늘은 아주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제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가을 펜팔 친구로부터 손 편지도 받을 것이다. 가벼운 흥분과 기대감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을 연결해 주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편지. 편지를 쓰는 일은 보고 싶거나 그리운 이를 향해 마음을 전해 보는 시간이다. 때로는 닿을 수 없는 인연에 혼자만의 말을 건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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