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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Dec 02. 2022

익선동에서 안부를 묻다

아주 오래된 

 

 코로나로 인해 생활 반경이 많이 좁아졌다. 대부분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면서 마음만은 멀리 다녀오기도 하고 높이 날아오르기도 했다. 도서관은 내게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무료 충전소다. 특히 뉴욕에 사는 동안 애용했던 ‘Enrich Your Life’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 도서관 카드는 그 어느 카드보다 소중한 물건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향수병을 달래줄 한국어책과 비디오를 빌려보는 일, 낯선 이국 생활에 적응해 가는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충전기였다. 


 고국에서도 내 일상의 기반은 도서관이다. 신간을 빌려오기도 하고 취미 교실에서 특별한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대면으로 많은 강의를 들었다. 특히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서울을 다시 음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여 년 동안 고국을 떠나 있었으니 그 새로움은 클 것 같았다. 다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한때 인기 장소로 소개되었던 익선동 걷기를 우선 시작하기로 했다.      

 

 익선동은 열여섯 시골뜨기 십 대가 처음으로 서울 올라와 살았던 동네다. 언니는 대학을 남동생은 중학교에 가느라 나는 어부지리로 서울 고등학교로 유학 온 셈이었다. 낯선 타향에서 삼 남매가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한 곳, 익선동. 교동 초등학교를 지나 덕성여대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낯익은 곳이 하나쯤은 남아있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거미줄 같은 전선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좁은 골목은 변함이 없었다. 반가웠다. 골목마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가게들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다 마침내 찾아낸 21번지, 거기였다. 집 앞길은 여전한데 건물은 새 옷으로 바꿔 입고 있었다. 생각은 두서없이 아주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좁은 한옥 문간방. 특별한 직업이 없던 젊은 집주인. 집주인 대신 아침 일찍부터 미군 부대에 나가 일하시던 할머니. 웃는 모습이 참 고우셨다. ‘외지까지 와서 고생하지?’ 하며 PX에서 가져온 초콜릿을 나눠 주기도 하셨다. 연탄불을 꺼뜨려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방에서 함께 잤던 어느 겨울밤까지, 잊고 있던 장면들이 서로를 소환해 왔다.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가 많은 익선동, 무엇보다 청춘을 보낸 곳이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첫사랑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했던 곳이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는 법, 처음 그 설레던 마음은 미움이 되고 아픔이 되다가 끝내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말았던 날들. 빛바랜 추억이 되어 아주 오랫동안 소식도 모른 채 먼 거리를 두고 살았다. 

 철쭉이 두 눈을 아프게 했던 어느 해 봄날, 남도를 여행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광주공항에서 우연히 해후했다. 30년 만이었다. 일행이 있어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나 가슴은 제 맘대로 뛰기 시작했다. 시간은 참으로 마력 같은 힘이 있는 걸까? 미움보다는 연민으로 다가왔던 반가움과 설렘. 간신히 이메일 주소 하나를 받아 들고 나는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푸른 청춘이 머물렀던 곳. 그를 다시 놓쳐버린 지 이십여 년, 혼자 여기 와 있다. ‘젊은 날을 생각하면 한밤중에 일어나 통곡이라도 하고 싶다’라고 했던가? 그것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회한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한 쓸쓸함 같은 것 말이다.

 잠시 회상에 젖어보던 시간을 뒤로하고 비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비원 앞. 저녁을 먹고 갈 곳 없던 우리 남매는 여기가 마치 우리 집 마당인 양 소리를 지르며 배드민턴을 치고 놀았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결혼식을 올렸던 이화예식장 자리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래된 기억 속 어느 골목에 어렴풋이 서 있는 나의 젊은 날에 가만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칼바람이 분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일상이 조금 활기를 되찾아가는 듯싶더니 겨울철이 되면서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불편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아프기도 했으며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제는 이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지 나름 알아서인지 크게 두렵지는 않다.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면 된다는 여유가 생긴 것은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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