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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Aug 26. 2022

국석도 (장승업)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

국석도(菊石圖) - 장승업(출처 : 공유마당 CC BY)



군자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하여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라거나 ‘반드시 그렇게 하면 안된다’라고 고집부리지 않는다. 오직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이인편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논어》를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공자가 평소에 자주 강조했고, 제자들도 중요하게 여겼던 말을 후세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편집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반복되는 내용 중 하나가 편협한 가치관에 대한 경계입니다. 공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이나 견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무턱대고 믿거나 결정하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매사를 꼼꼼하게 살펴서 알맞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중용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중용(中庸) 가운데 () 쓰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기보다는 중간이 낫다라는 뜻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용에서 중은 위치상으로 가운데나 중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알맞은 상태를 뜻합니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운데가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변하지 않는 일정함을 뜻합니다. 그러니 중용은 간단히 말하자면 알맞은 선택으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상태입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흑백논리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서양에서 비롯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초월적 존재를 받드는 종교문화가 활발했던 서양에서는 직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발전했고, 그에 반해 농경문화가 발달했던 동양에서는 순환적 사고방식이 발전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분법적 사고의 대표적인 예가 ‘선과 악’입니다. 


 동양의 관점으로는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선하지 않다'라는 뜻의 '불선(不善)'이라고 합니다. 의(義)의 반대말이 불의(不義)이고, 효(孝)의 반대말을 불효(不孝)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중용도 공자나 그를 따르는 유학자들만의 개념이 아니라 동양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유학자들이 그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파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알려진 책의 제목으로도 유명한데 《논어》, 《대학》, 《맹자》와 더불어 사서로 불립니다. 사서는 유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전이며, 과거 시험의 기본 교재였습니다.


 위의 《논어》 구절에서 의로움으로 해석한 한자는 의(義)입니다. 의는 의롭다, 옳다, 바르다는 뜻으로 쓰이는 한자입니다. 정의, 의리, 대의 등으로 활용됩니다. 공자는 이러한 다양한 뜻을 아우르는 의를 가치판단의 기본 기준으로 활용했습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도리의 잣대를 의로 삼은 셈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모든 말과 행동은 선택으로 이어지며, 그에 따른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합이 현재의 자신입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르지 않은 것에 휘둘리지 말아라. 눈앞에 작은 이로움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지 말아라. 그저 의로움을 기준으로 삼아라.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 (이인편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국화는 가을꽃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노란색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꽃들이 봄과 여름에 피지만, 국화는 가을에 꽃을 피웁니다. 늦가을까지 서리를 맞으면서도 꽃이 핍니다. 선비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피는 꽃을 높이 평가하여 사군자에 포함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국화가 절개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국석도(菊石圖)〉는 바위 위에 핀 국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줄기와 잎은 과감하고 꽃은 생명력이 돋보입니다. 과감함이 낭창낭창 위로 향하여 커다란 생명력을 터뜨렸습니다. 화려한 꽃의 고고한 자태가 압도적입니다. 꽃잎이 마치 불꽃놀이 같습니다. 먹을 잔뜩 머금고 퍼진 듯한 잎과 날카로울 정도로 툭툭 이어진 줄기의 조화가 오묘합니다.


 이 그림은 장승업의 작품입니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이응헌(李應憲)의 집에서 하인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장승업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어깨너머로 글과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불우한 환경에서도 배움에 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관(譯官, 통역을 하던 관리)이었던 이응헌은 평소에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다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승업의 재능을 알아보고 화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하였습니다. 배우지 못했던 고아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 되어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장승업의 명성을 들은 고종이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맡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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