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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Aug 28. 2022

설죽도 (이정)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오래된 약속을 지켜라

설죽도(雪竹圖) - 이정(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더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사는 동안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오래된 약속을 지킨다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헌문편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


 위 구절은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붓글씨로 남겨 널리 알려졌습니다. 안중근은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더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한자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8글자를 쓰고, 약지가 잘린 손바닥에 먹을 칠하여 낙관 대신 찍었습니다. 이 붓글씨는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국가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안중근은 조선을 빼앗고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데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뤼순 감옥에 갇혔습니다. 재판을 받는 동안 많은 글을 써서 일본인 검찰과 간수 등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안중근의 애국정신과 당당한 태도에 감명을 받은 일본인들은 그의 글씨를 고이 간직하였다가 한국에 돌려주었습니다. 현재 25점의 붓글씨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그중에서 ‘견리사의 견위수명’은 짧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안중근이 독립운동에 몸 바친 기간은 만 4년이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렬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쓰고,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에 대항하였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기 위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손가락을 자르며 맹세하였고, 그 피로 대한독립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안중근의 독립운동은 경술국치(國權被奪, 한일강제합병)를 5개월 가량 앞둔 시점에 32살의 나이로 막을 내렸지만, 그 정신은 글과 행적으로 아직까지 묵직하게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중근은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한 동료들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이 처형당한 뒤에 그의 사진엽서가 발행되었습니다. 일본은 그를 야만적인 범죄자로 낙인찍으려고 엽서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서민들은 그를 충신이라고 여기며 엽서를 구입했습니다. 안타까움과 존경하는 마음이 반영되어 그의 엽서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반면, 당시 지식인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에 조문단을 보내고 국내에서 추모 행사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일본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선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자로가 성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옛사람들의 뛰어난 능력(지혜, 무욕, 용기, 재주)을 나열하며, 그것들을 예와 악으로 조화롭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울러 요즘에는 그 능력들을 전부 갖기 어려우니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더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사는 동안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오래된 약속을 지킨다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라는 위 구절을 덧붙였습니다. 


 성인(聖人)은 최고로 선한 경지에 올라선 인물을 뜻합니다. 압도적인 인품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공자도 자신을 감히 성인과 비교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평가했을 만큼 결코 만만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어쩌면 공자가 생각했던 성인이란 군자가 도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상적 경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나무는 형태에 따라서 굵고 가는 것과 길고 짧은 것으로, 환경에 따라서 바람에 흔들리거나 눈이 내리거나 안개가 끼는 것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됩니다. 사군자 중에서 가장 변주의 폭이 넓은 편입니다. 또한 사군자 중에서 유일하게 꽃을 그리지 않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꽃은 없지만 잎의 다양한 조합으로 얼마든지 화려함을 뽐내기도 합니다.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지니고 곧게 자라는 특성으로 사군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대나무 그림을 보면 아래쪽의 바닥에서부터 줄기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위 작품은 세 그루의 대나무가 모두 왼쪽 측면에서 나옵니다. 곧게 위로 뻗어나가지도 않고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전체적으로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나무 잎의 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잎들이 줄기와 달리 오른쪽 아래로 동일한 방향성으로 갖습니다. 집단을 형성한 잎이 듬직합니다. 〈설죽도(雪竹圖)〉는 눈이 쌓인 대나무 그림을 말합니다. 검은색의 먹으로 대나무를 표현하기에 눈은 여백을 이용합니다. 칠하지 않음으로 하얗게 눈이 쌓인 효과를 만듭니다. 


〈설죽도〉는 이정의 작품입니다. 그는 조선 중기에 대나무 그림으로 압도적 실력을 뽐냈던 사람입니다. 대나무 이외에도 난초와 매화도 잘 그렸고 시와 서예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이와 같이 그림도 잘 그리고, 시도 잘 지으며, 서예로 글씨도 잘 쓰는 사람을 삼절(三絶)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의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고손자로 촌수가 멀지만 왕족 출신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칼로 그의 오른팔을 쳐서 다쳤으나 부상을 극복하고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설죽도〉는 그가 72세 때 그린 대나무입니다. 


  

 견리사의견위수명 - 안중근의사 유묵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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