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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Dec 04. 2023

혼자만 사바이 사바이하지 못해서

치앙마이 스트릿 재즈 페스티벌 231203

12월 3일은 대망의 치앙마이 스트릿 재즈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티켓을 사두었으므로 당연히 가야했다. 5시부터 공연 시작이었지만 아침에 모두 끝내버린 요가와 빨래 외에 할 일이라고는 없는 일요일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죽치고 있다가 가려했지만, 오래 앉아있기 좋을 것 같아 골랐던 Caramellow Cafe마저 실외는 벌레가 너무 많고, 실내는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긴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4시 10분경에 행사장 도착. 누가 보면 엄청난 열혈 팬이라도 된줄 알겠지만, 실제 나는 당일 공연하는 뮤지션들조차 제대로 모른다. 그저 티켓값이 아까워 귀찮음을 무릅쓰고 찾아간, 텐션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여행자에 불과했다. 달리 할 일이 없고, 시간 약속에 늦는 것을 싫어할 뿐. 그래도 메인 스테이지의 VIP 티켓이 빨리 매진되었다는 점, Dale Barlow 라는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Jazz Messengers의 멤버였던 적이 있고, Chet Baker와 Miles Davis같은 대가들과 합주를 한적도 있단다)가 온다는 사전 정보로, 지난번(형, 재즈라고 했잖아요…? 참조)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를 했던 건 사실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5시가 되었다. 공연을 기다린 것인지 맥주를 기다린 것인지. (태국에서는 오후 다섯시 전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우선 맥주부터 한 병 샀다. 보통 로컬맥주보다 비싸게 파는 하이네켄이 로컬맥주 싱하와 같은 가격으로 100밧이라, 오랜만에 하이네켄을 샀다. 첫 몇모금만 시원하고 금세 미지근해졌다. 무려 VIP석이라고 마련된 맨 앞줄(정가운데는 차마 뒷통수가 따가울 것 같아 앉을 수 없어 가장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오랜만에 하이네켄 (100THB)

페스티벌 관람소감을 짧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음악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으로서, 나의 음악공연 관람 스펙트럼은 대강 0) 보고 있기 민망하다, 1) 어? 뭐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2) 집중이 되지 않고 아무런 자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3)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되고 잡념이 끼어들지 않는다, 4) 닭살이 돋는가 하면, 순간 순간이 응집되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의 순전히 주관적인 0에서 4까지의 단계로 펼쳐져 있다. 이 날은 0에서 3까지 고루 느꼈고, 4는 (감히) 거의 느끼지 못했다.


10시반쯤 되었을 때, 졸립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 행사장의 화장실에 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이 견딜 수 없이 번거롭게 느껴져 택시를 타고 집에 와버렸다. 11시에 공연이 예정된 맨 마지막 팀 'Paparesto'는 보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공연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는 일차적인 이유 말고도, '열심히' 임하고 있는 이들을 평가하듯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공연하는 밴드의 실력이 우상향하고 관객의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무대 앞 잔디 위에 깔린 길다란 고무매트 두줄에 사람들이 하나둘 와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들이 특별히 시야를 가린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 외의 요소가 추가로 눈앞에 어른거리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덧 고무매트가 꽉 찼을때는, 맥주병이나 스낵을 사들고 무대 앞을 수차례 종횡하는 이, 일어나서 연신 춤을 추는 아이 등등을 따라 나의 시선이 종잡을 데 없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VIP'라지만 일반석 대비 꼴랑 한화 6천원을 추가 지출했을 뿐이니, 이럴거면 일반석과 VIP석을 왜 나누었느냐고 열 올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의 고무매트보다 나의 방석이 더욱 푹신한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스트릿) 재즈이고 야외 음악공연 아닌가.


'사바이 사바이' ('사바이'의 문언적 의미는 '편안한' comfortable, '릴랙스된' relaxed와 같은 것들이 있어, '사바이 사바이'라는 말이 'take it easy'와 같은 맥락에서 자주 쓰여진다)의 국가 태국, 그것도 치앙마이에서라면 축제가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주최측과 뮤지션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겨주는 관객들을 반기는 눈치였다.


그런데 어쨌거나 나는 별로다. 나중에는 그냥 피로해졌다. 다른 모든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문제가 있다면 나의 팽팽히 조여진 눈과 귀에 있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자니 한층 더 피곤했다. 이 와중에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수고까지 더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싫다,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반부 공연을 보다가 뇌리에 한번 떠올라서는 내내 지워지지 않은 단어가 '아마추어'였다. 이제까지 내 미학적 취향은 완결성보다는 의외성이었는데! 모든 개념과 심상은 왕복운동을 하는 것인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한참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더 피곤했을까. 백수가 시간을 할애하는 그 모든 일에서 한 가지라도 아마추어가 아닌 것이 있는가. 이래서 남편이 글이네 영상이네 이것저것 시도하다 괜한 마음고생하지 말라며, 책이나 읽으며 좀 쉬라고 했던 거다. 듣고선 꽤나 발끈했지만.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씻고 자야겠다 생각했을만큼 졸렸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먹다남은 돼지껍질 튀김과 쌀과자를 안주로 맥주를 한캔 더 마셨다. 유튜브를 보다 잠에 든 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부부 여행유튜버가 독일 시골마을에서 알파카에게 당근을 먹이는 장면을 보며 재미있겠다, 는 생각을 하다 아차 싶었다. 나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백수를 선언하고 이 좋은 치앙마이를 찾아와, 있는 돈과 없는 돈을 모두 써가며 한달 씩이나 살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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