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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Oct 31. 2022

지금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보이는 게 전부였던 시절도 나는 빈칸으로 시작했고 끝이 나도 나는 오로지 빈칸이었다 


   답이 없어서 보다 내가 없어서 아니 내가 안 보여서 슬픔마저 없었다 나는 우는 것 같아도 눈물이 보이지 않아서 울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울음은 안 보이는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나의 울음도 그 울음 밖인지 안인지는 몰라도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몸이 말린 것으로 보아 문득 당신을 대신해서 내가 우는 듯했다 


   당신의 울음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뱉어 내는 각혈 같아서 붉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모를 꽃처럼 태어났다 안 보이는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지켜 내는 것처럼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게 떠나야 했다 걸어가면서도 걷지 않는 것처럼 살면서도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진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서 편해졌지만 나는 슬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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