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향악정재
무애는 걸림(장애)이 없다는 뜻으로 해골바가지 물로 유명한 신라 고승 원효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저자거리에서 노래하며 추던 춤입니다.
고려 때 궁중에 유입되어 연향에 선뵈였으며 무용수는 무애라고 불리는 호리병을 들고 공연합니다.
고려시대부터 대가(임금의 수레)의 환궁 시 영접용으로 연행된 춤입니다.
임금이 궁궐 밖에 행차했다가 돌아올 때 임금을 칭송합니다.
북춤으로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향악정재입니다.
무용수들이 바닥의 북틀에 설치한 북을 치면서 치는데 북춤, 고무, 고고무, 무수, 정자 등으로 불립니다.
고려 시대부터 전해진 향악정재이며 상아로 만든 타악기 아박을 들고 치면서 추는 춤입니다.
향발(놋쇠로 만든 작은 바라)을 양손에 매고 부딪쳐 소리를 내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 초기 향악정재입니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선조의 공덕과 국운을 기원하는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 건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용비어천가는 태조의 조상 포함 6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데 봉래의는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초기 만들어진 정재입니다.
1393년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를 칭송하는 가사를 지어 올린 후 춤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신라의 처용 설화에 기원을 둔 향악정재입니다.
무용수 5인이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입니다.
학 모양의 탈과 의상으로 연못 주변에는 노니는 학의 모습을 표현하며 추는 춤입니다.
학춤은 고려시대에서 현재까지 전승되어 온 향악정재이며 민간에도 유사한 춤이 있습니다.
학무와 연화대 두 편의 정재를 차례대로 추는 춤입니다.
학무, 연화대(당악정재, 금방울이 달린 연꽃모자를 쓰고 추는 춤), 처용무를 연이어 추는 춤입니다.
목단(모란)은 부귀의 상징입니다. 화투패 유월에 있는 그 그림입니다.
가인전목단은 모란 앞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조선 후기의 향악정재로 모란꽃을 꽂아 놓은 화준(꽃병)을 중심으로 여러 무용수들이 꽃가지를 뽑아 들고 추는 춤입니다.
조선 순조 때 만들어진 향악정재입니다.
풍년을 축하(경풍)하고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의 창작무입니다.
순조 때부터 연행되어 온 향악정재입니다.
고구려풍의 의상을 입은 6인의 무용수가 이백의 시 고구려를 노래하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후기 궁중정재의 하나입니다.
무동 2인이 양 손에 검을 머리에 고운계(구름을 본뜬 모자)를 석죽화(패랭이꽃) 무늬의 초록색 전복을 입고 춥니다.
조선후기인 헌종 때 지방 교방에서 궁중으로 유입된 향악정재입니다.
정철의 관동곡을 노래하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후기 숙종 무렵 확인되는 향악정재입니다.
무동 2인이 넓은 소매(광수)를 이용해서 추는 춤입니다.
1828년(순조28) 6월 효명세자가 작곡하여 어머니 순원왕후 40세 생신연에 올린 춤입니다.
선인(신선)이 왕의 장수와 태평성세를 기원하며 신선의 복숭아를 바치는 내용입니다.
조선후기 순조 때 창작된 정재입니다.
망선은 선인을 기다린다는 의미며, 작선(부채 종류)으로 만든 문으로 무용수가 드나들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후기~대한제국 궁중에서 연행된 향악정재로 기녀가 양 손에 칼을 들고 추는 춤입니다.
형식은 2인, 4인, 8인 구성의 여성무용수가 검을 들고 마주보면서 춤을 춥니다.
1828년 효명세자가 지은 향악정재입니다.
무용수 6인이 세 쌍으로 나누어 봄 나비를 형상하며 추는 춤입니다.
1828년 6월 효명세자가 어머니인 순원왕후의 생신을 경축하기 위하여 올린 춤입니다.
보상반에 연꽃이 그려진 항아리를 놓고 무용수들이 항아리 안에 공을 던지며 추는 춤입니다.
사선은 신라 화랑 네 명(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을 지칭합니다.
1829년 순조 40세 축하연에서 효명세자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 처음 선보인 향악정재입니다.
사선을 소재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춤입니다.
민간의 사자춤에서 유래하였고 청사자와 황사자의 탈을 쓴 무용수가 춤을 춥니다.
1887년부터 대한제국까지 궁중에서 선보였습니다.
1795년 정조가 모친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평안도 지역에서 성행한 민간의 춤을 채택한 것입니다.
화려한 배를 둥글게 에워싸고 돌면서 이현보의 시조 어부사를 부르며 춥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향악정재입니다.
무용수 6인이 연화병의 연꽃봉오리 꽃을 각각 뽑아들고 산작화무(꽃이 펼쳐진 모양) 대형을 지으며 추는 춤입니다.
연못을 상징하는 영지에 비춰진 달그림자에 신선이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춤입니다.
1828년 순원왕후의 40세 생신을 경축하기 위하여 처음 공연하였습니다.
무용 도구인 첨수(삼각형의 뾰족한 형태)를 들고 추는 춤입니다.
조선후기 정재로 소매를 말아 잡고 추는 춤, 첨수를 들고 추는 춤, 검을 잡고 추는 춤 등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궁중의 경치(첩승)를 표현한 춤입니다.
조선 후기 효명세자가 만들었습니다.
초무는 숙종과 영조 대 궁중 연향의 첫 번째 정재라서 초무라고 불립니다.
두 명의 무동이 노래 없이 춤을 춥니다.
조선후기 효명세자가 만든 향악정재입니다.
무용수 6인이 봄을 찬탄하는 내용의 악장을 노래하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향악정재입니다.
보등(등불)과 당(막대 모양의 불구)을 든 무용수가 춘대 위에서 대열을 바꾸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 후기 왕실의 잔치, 대모반(침상과 유사) 위에서 임금에게 기쁨을 드리는 의미의 춤입니다.
무동(어린 무용수) 혹은 여기(여자 무용수) 1인이 한삼을 끼고 대모반 안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춤동작을 펼칩니다.
춘앵전과 함께 조선시대 처음 등장한 독무(1인춤)입니다.
돗자리 위에서 혼자 추는 독무입니다.
춘앵전은 봄날 꾀꼬리가 지저귄다는 뜻입니다.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로 침향정(당 현종과 양귀비가 놀던 정자)에 핀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춤입니다.
무용수 2인이 모란 화병을 가운데 두고 꽃을 어루만지다가 꽃을 들고 춥니다.
중국 홍문연 고사에 따라 항장이 검무를 추다가 패공을 죽이려 했던 고사를 풀어나간 춤입니다.
조선 후기에 검무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며 평안북도 선천 지방에서 만든 무용극으로 고종 때 처음으로 궁중 연향에서 선보였습니다.
양손에 매단 방울(향령)을 울리면서 신선의 방울소리를 연출하는 춤입니다.
조선 후기 궁중과 관아의 연향 때 추던 향악정재입니다.
헌천화는 하늘의 꽃을 바친다는 의미이며, 왕에게 천화를 올리며 장수와 태평을 기원하며 추는 춤입니다.
조선 후기의 향악정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