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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Jun 27. 2024

가끔 우울이 찾아올 때.

난 가끔 우울해. 

아주 가까운 사이도 그 사람에 대해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나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찌 타인에 대해서 완벽히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말합니다. 

"OO 씨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OO 씨는 웃음이 많아요. OO 씨는 밝은 사람이에요." 


모두 긍정적인 평가이고,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들은 당사자는 생각합니다.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내가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내가 밝은 사람이라고?' 말이죠. 


사실, 긍정적인 평가를 들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는데…' 

'나는 혼자 있을 때, 잘 안 웃는데…' 

'내가 밝은 편이었나?…'


자신 스스로 내리는 평가와 달리, 밖에서 내려진 평가는 긍정적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괴리감에 칭찬을 들은 사람은 못내 당황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칭찬을 받은 사람이 가면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모습과 사람들과 함께 할 때의 모습이 달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나 자신에게 참 못됐게 굴고 있었구나.' 

'타인에게 잘하려고 하는 만큼, 나 자신에게 잘하려고 한 적은 없구나….'라고 말이죠.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던 사람은, 사실은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늘 불안한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의 좋은 면보다는 못난 면을 찾아내서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안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편한 것을 보면,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서 늘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죠. 그래야만, 일이 잘 풀려 갈 것이고, 만약 지금 삶이 잘 안 풀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질책함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 같은 것이 그 사람이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그 사람은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만의 아픈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감정은 '우울'이라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곁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가끔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 사람이 행복할 때쯤 다시 슬그머니 찾아와 우울이 그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우울은 교묘하게 사람들과 함께 일 때는 그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슬그머니 나타나 그 사람을 내내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우울은 꽤 힘이 강했습니다. 밝아 보였던 그 사람을 한없이 슬프게 만들었고, 불안하게 만들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울을 떨쳐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따금 찾아오는 우울을 핑계 삼아 깊은 휴식기에 빠져들었죠. 


그 사람은 생각합니다. 

'우울이 두렵지 않아. 아니, 우울이 떠날까 봐 불안해. 나는 우울이 있을 때, 우울을 핑계 삼아 깊은 동굴로 숨어버릴 수 있거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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