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전까지는 소란스러웠는데 지금은 조용하지? 친구들은 모두 넓은정원에서 놀고 있어. 이제 편하게 얘기해보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들고물었다.
"네? 정원요?거기위험하지 않아요?"
"응? 왜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 전에친구들한테들었는데, 정원에는 무서운 짐승들이 종종 나타난다고 하더라구요. 들고양이나, 가끔씩 순식간에 채어가는 매나 독수리 또, 종종 사나운 개들과 마주칠 수도 있고."
"하긴, 그런 짐승들을 갑작스럽게 마주치면 깜짝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위험할까 봐 무섭기도 하지."
"와, 정말 맞네요. 그 얘기들이.. 그래서 저는 밖으로 못나가겠어요. 겁이 나요."
"그래. 이해한단다.예전에 몇몇친구들도 너처럼 비슷한 걱정을 했었거든. 네가 들은 이야기들처럼 위험한 짐승들이 간혹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야.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나도 다른 친구들도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를 늘 한단다."
"게다가, 저는사람들.. 때문에 더욱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은.."
그때, 뭔가 벽 바깥 오른쪽에서 갑자기 후드득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누군가가다다닥 뛰어와서는 오른쪽 벽에다 "셋째 발가락!"하고 소리치더니 순식간에 멀어졌다.
깜짝이야! 뭐지?..
익숙한 목소리인데...
아! 맞다. 그 친구는 어제 밖으로 나갔지. 벽을두고 대화할 때보다 너무 또렷이 들려서 잠시 헷갈렸지만, 그 친구 목소리가 분명해.재밌던 그 친구 생각에 순간 웃음이 났다.
"아는 친구니?"
"네. 저 친구가 바로 옆에 있던 친구였는데 벽 바깥쪽 얘기들을 많이 들려줬어요. 자기가 있던 곳이 바깥쪽에서 제일 가까운 경계에 있었는데 어쩌다 제가 있는 곳 근처까지 왔다고 하더라고요."
"응, 그렇구나.고 녀석 참 재빠르네."
"그런데, 셋째 발가락은 무슨 뜻일까요?"
"글쎄다. 무슨 뜻일까? 음.. 그런데, 너 춥니?"
몸이 축축해서 가끔 부르르 떨린다.
"뭐, 익숙해서 괜찮아요." 하며,
어깨를 모으고 고개를 더 숙여 온기를 더해보려 하는데,
왼쪽 어깨 쪽에 따스함이.. 이번엔확실히 느껴졌다.
"사람들은.. 아.. 아니에요. 이제 가보세요.다들 기다리는 거 아니에요? 전 혼자 있어도 돼요."
"괜찮아. 나는 너랑 얘기 나누는 게 좋아. 하고 싶은 얘기 얼마든지 해도 돼. 궁금한 거 있음 질문해도좋고."
한 번만 더 확인해볼까?
"그럼 궁금한 게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눈을 마주하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하면서 따뜻하게 대해준다는데, 사실인가요?"
"응 맞아,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해. 다들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 무서운 사람.. 들은 요?"
"무서운 사람들?"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그 친구가 얘기해준 거니?"
"아니오, 아까 친구랑은 완전 반대편 구석에 있던 친구가 곁에 왔을 때벽 너머로 들려준 이야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그럼 좀 더 얘기해줄래?"
고개를 다시 가슴에 파묻고 심 호흡한 뒤 고개를 살짝 들어,조심스레 입을 뗐다.
"어떤 나쁜 사람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가까이 가면 돌을 던지거나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도 하고 심지어 거꾸로 매달아서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듣기만 해도 너무 소름 끼치는 것 같아요. 그 얘기 듣고는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없어졌어요."
"응. 그래.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구나. 친구얘기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하지만, 몇몇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맞아."
"마.. 맞죠? 그런 거죠? 그래서 저는 밖으로 나간 친구들이 괜찮은지 걱정도 되고. 아무튼 밖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보다 조금이라도 바깥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몸이 더 서늘해지는 것 같아 다리가 저절로 조금더 움츠러들었다.
"그렇게나 위험한 것들이 있는데, 왜 다들 밖으로 나갈까요? 나처럼 그런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일까요? 그런 일쯤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님, 자신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이렇게 빨리 말할 수 있었나?
"그런데, 그 보다 더.. 더.. 나가기가 두려운 것은.."
더 깊은 속마음도 덩달아 뱉아버렸다.
"두려운 것은?"
"아, 아니에요."
"뭔가 두렵게 느껴지는 게 있니?"
"아니오. 아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그럼 천천히 생각해보렴. 난 잠깐 정원에 다녀와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 나눠보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내가 '두려움'이란 걸 느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하긴,다른 친구들도 그때 분명 나와 같이이런 얘기들을들었는데도 용감하게들 나갔어. 내가 그 친구들과 다른 건.. 내가 몰랐던 그 두려움이란 것 때문인 건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눈꺼풀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다.
"톡"
"네, 깨어 있어요."
"응, 잘 잤니? 조금 전에 네 벽쪽에서 소리가 안 나길래 나도 잠시 쉬고 있었단다."
"아. 제가 생각보다 오래 잤나 보네요. 한결 몸이 따뜻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전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제가 '두려워'한 게 맞는 거 같아요."
"응. 아까 나눴던 이야기구나.. 그래, 어떤 게 두려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니?"
스스로 생각이 정리될 때와 달리 막상 얘기하려니, 살짝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일단... 일단은,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약한 것 같아요.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제가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힘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을 때 위험이 닥쳐오면 어차피 제일 약한 내가 제일 먼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지킬 수도 없는데, 밖으로 나가면 뭐해'하는 마음도 같이 생기고."
"흐음. 그렇구나, 그래..그래.맞아. 너처럼 얘기하는 친구들을만난적이 있단다. 그런데 재밌는 건 뭔지 아니?"
"아니오. 모르겠어요. 별로 재밌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래.. 그런데 막상 밖에 나와 보면 다른 친구들과 별로 차이가 나진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될 걸.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거야. 아무래도, 벽속에 갇혀 볼 수 없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상상하는 친구들이 많거든."
부드러운 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그런 위험을 스스로 피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없어.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 무서운 동물들이 나타나는 위험 한 곳을 미리 기억하게 한다던지, 실제로 마주쳤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등등을 배워서 위험을 대비한단다."
"그럼, 위험을 피할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피할 순 없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엄청 많거든. 사람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이고. 그렇지만, '나'보다 '우리'일 때 더 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옛날부터 계속 그 위험들을 피하는 방법들이 계속 전해져 왔어. 그리고, 정말 몸이 불편하게 태어나는 친구들도 간혹 있는데, 일단 용기내어 밖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가 힘을 모아 그 불편한 것을 채워주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약하거나 왜소하다거나 불편해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이 바로 '위험'을 뜻 하는 건 아니란다."
이야기들 듣다 보니, 차마 친구들에게도 묻지 못했던 궁금 한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네.. 혹시..결국 밖에 나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나요. 저처럼?"
"응, 있단다. 가끔."
의외의 담담한 대답에, 오히려 좀 더 일찍 물어볼걸 그랬나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그럴 땐 어떡해 하나요? 밖으로 나갈 때까지 설득을 하나요? 아님, 벽을 일부러 깨뜨리고 꺼내주거나...그것도 아니면 그대로 두나요?"
"모든 상황이 그때마다 달라서, 똑같이 하진 않아. 그런 상황을 만나면 기본적으로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대화를 나눠보지만 그것마저 어려우면 그저 벽속의 행동을 잘 관찰해서 그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해보려고 하지.. 물론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나가지 않았던 친구들이... 있는 거죠?"
"물론 있지. 드물긴 하지만."
"그때는 어떻게 하나요?"
"완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기본적으로는 존중해줘. 그건 옳고 그름 이전의 문제이니까. 밖에 나와서도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일정한 '교육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자신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하지만, 벽을 깨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분명 저 깊숙한 곳에 흐르고 있는데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저 육체적인 한계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라는 게 확실하다면 어떻게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