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든라이언 Jun 04. 2022

틈 ( II )

생명과학자의 철학

[틈 ( I )에 이어..]


"너는 어떤 마음인 것 같니?"


이런.

되려 질문을 받다니.

사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차마 부끄러워 그 얘기를 할 수가 .

"글쎄요.."

그래서, 도저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미뤄 뒀던 얘기를 꺼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이제 궁금한 것들이 많이 풀렸지만, 한 가지 더 깊은 고민이 있어요.."

"응, 넌 생각이 깊은 아이구나.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고민인지 궁금하네."

"엉뚱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동안 해주신 얘기들을 들으면서, 밖으로 나가더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왜냐하면, 결국에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되잖아요. 선생님이든 친구든.. 그리고 그런 일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좀 전에 친구들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위로해주셨지만, 저는 실제로 몸도 허약해서 많이 아플 것 같아요. 그래서, 밖으로 나가 많은 이들과 만나더라도 슬픈 일이 많을 것 같고 또 오히려 내가 남들에게 헤어짐의 아픔을 줄 수도 있을 것도 같아서..

사실은, 이게 제일 두려운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그랬었구나.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진짜 이유가.. 꺼내기 힘든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이어진 짧은 침묵의 시간, 살짝 긴장감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네가 들려준 두려움은 밖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늘 품고 있는 거 같아. 난 항상 건강할까? 가족들은, 친구들은 잘 지낼까? 그리고,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과 언젠가는 이별하는 거 아니야? 애써 슬픔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운 생각이 잠들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이 두려움은 벗어날 수 없는 건가요? 저는.. 이대로 두려움을 안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하지만, 벽 안에 있든 밖에서 살든 그 누구라도 소중 한 것들이 항상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한 그 두려움함께 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나요? 대화를 나눴던 친구들도 지금 고민을 들어주는 선생님도 이미 제게는 소중한데.."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때 살짝 어두워지며 벽이 다시 따뜻해졌다.


이어 들리는 부드러운 음성,


"네가 만약 밖으로 나온다면 정원에 핀 예쁜 '꽃'이란 걸 볼 수 있어, 모양도 색깔도 다양하고. 아마, 너는 예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거야. 어제 밖으로 나간 네 친구들은 지금 그 꽃들을 보며 즐겁게 놀고 있거든. 그런데 그 '꽃'들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못한단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이내 사라져 버려.  예쁜 꽃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빛나는 '태양'이라는 것도 밤이 되면 사라지고, 그들이 예쁘게 흔들리도록 도와주는 살랑거리는 '바람'이라는 것도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다."

"그러니까 슬픈 일이 맞네요. 그럼 지금 정원에 놀고 있는 친구들은 그것도 모르고 즐겁게 놀고 있다는 거잖아요."


"응. 맞아. 그런데 잘 들어보렴. 꽃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 뒤에는 늘 '새로운 바람'이 분단다. 또 태양이 지면, 밤에 달과 별이 뜨고 다시 다음날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꽃을 계속 비춰주고.. 그리고, 예쁜 꽃 들은 모두 각자의 꽃씨를 날려서 그다음 해에 다시 다른 곳에서 '새로운 꽃'으로 예쁘게 피어나."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은 사라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나타난다는 거죠?"


"그렇지! 아주 영리하구나. 세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하루살이'라는 친구도 온종일 서있는 '히말라야'라는 큰 산도 똑같이  겪는 '자연(自然)'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까, 헤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때 드는 아픈 감정들도 충분히 느끼고서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게 그대로 잘 흘러가도록 두면 시간이 지나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어서 나타난단다. "

 "그럼, 저나 친구들도 사라지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되는 건가요?"

 "하하. . 글쎄.. 너와 친구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너희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소중한 존재들인 것은 분명해."


갑자기 태양과 바람과 별과 달 그리고 꽃이라는 걸 너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볼까?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랫동안 궁금한 게 있었어요.  내가 기억하는 첫날엔 '톡' 하는 소리만 들리고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가 안 나서 아무도 없나 했는데, 조금 있다가 점점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었어요. 그때 옆에 있었던 것 맞나요?"

"응. 맞아."

" 다음에 올 때부턴 '톡'하고 난 뒤에 늘 내게 말을 걸어 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날에 '톡'한 뒤에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그냥 간 이유가 뭐예요? 전 그게 한동안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그때, 벽의 양쪽이 모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오늘 오전에 네가 너무 두려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지?"

"네"

"내가 처음 벽을 '톡'하고 건드렸을 때 네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해서 한동안 말을 잊고 있었던 거야. 너무 아프면 말 할 수 없듯이, 말 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을 가진거란다."


아..

"그렇구나!"

뭔가..  용기가 생기는 느낌..

무엇보다 이 따뜻한 음성의 주인공을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저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졌어요."

"오! 그래 밖으로 나온다니 기쁘구나."

"네, 얼른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꽃들도 보고 싶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오는 방법을 알려줄 수가 없어"

"왜요?"

"우리 누구나 스스로 자기의 의지로 미래를 결정해. 그곳에 머물던 밖으로 나오든 그건 너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란다. 정말 나오겠다고 마음먹고 움직이면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래 나갈꺼야!

"알겠어요. 그런데 어느 방향이 하늘인지 모르겠어요. 그것만 알려주세요."

"어디에 어떤 위치에 있건, 진심이라면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그곳이 하늘이야."  

치.. 그냥.. 알려줄 수 없다고 하지..

아무튼, 마침내 개를 들고 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곤, 벽을 힘껏 쳤다.

"톡 "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작았다.

여러 번 더 시도했지만, 여전히 힘이 안 닿는 가보다.

"용기 내서 잘했어.. 조금 더 쉬었다 해봐. 아직은  몸 사용법을 모르는 것 같아."

"헉.. 헉, 힘든데 대신 뚫어 주면 안 돼요?"

"안된단다. 그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밖에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문이거든. 잘 고민해 보렴"


한참을 끙끙 고민하다가 순간,

친구가 벽에 대고 외쳤던 그 말이 문득 생각났다.

"셋째 발가락!!"

그의 말대로 셋째 발가락에 힘을 주고 양쪽 어깨를 벽에 한껏 밀착시키면서, 온 힘을 다해 벽을 쳤다.

"툭!!" 드디어, 벽에 금이 갔다.

바깥에서 들리는 큰 기쁨의 외침.

"잘했어! 해냈구나. 잠깐만 눈감고 기다리렴."

톡톡.. 톡.. 툭!!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 부셔..'

잠시 목이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다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빛나는 곳으로 다시 올려다보았다.

"자. 이제 천천히 눈을 뜨렴"

깊은 바다 같은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불렀다.


"엄마"






[에필로그]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과 스승님들에게 감사드리며,

꿈을 향해 도전하고픈 또는 열심히 도전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누구라도,

우리는 이미 '더불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틈' 을 만들어 보아요. 함께.


- 골든라이언 -



---

사진 출처: 커버사진은 개인 것입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pixabay.com 에서..

이전 28화 틈 ( I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