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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선택

by 등대지기

마음속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졌다. 학교에서는 분명 어려운 친구들을 안아주고 서로 도와주며 지내자는 교칙을 배웠을 텐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 요즘 사춘기 학생들은 흔히들 말하는 MZ 세대는 자기만의 주장이 오로지 올바른 방식이라며 누군가를 집 밟아 버리는 시대가 온 거 같다. 딸과 한바탕 퍼붓고 나니 쌓여 있는 마음들이 대학시절 봄 볕 아래 잔디밭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분노가 사라지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것들을 당장이라도 잡아 무릎을 굻어고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딸에게 후폭풍이 몰려올까 봐 잘 타일러 친구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그냥 이 친구들 버리고 조금만 견디고 버텨보자

저장해 놓은 전화번호 모두 지우고, 힘들겠지만 좋은 친구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을 거야 너의 매력에 다가서고 싶은 친구들이 분명 있을 텐데 욕하고 나쁜 이 친구들 때문에 네 곁에 다가서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고, 솔직히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다고 잠도 못 자고 아침에 눈 뜨기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른다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딸이 말했다.

딸이 이 친구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힘이 들었을까, 혼자 이 외로움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겨 내기 위해 가슴앓이를 얼마나 했을까, 물론 성장통 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도 학창 시절 친구가 전부인 날이 있었다. 사실 중학교 3년 친구도 없이 그냥 공부 못하는 조용한 아이였다. 완전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서지도 못했고, 공부도 못하고 어리석어, 친구들도 나를 다정하게 끌어당기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친한 척 다가왔다가 나를 이용해 먹는 게 다였다.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선생님 곁에 두기에 딱 좋았다. 숙제 혹은 일기 걷어오기, 선생님 말씀 전달하기, 담임 선생님 책상 청소하기 등, 그렇게 친한 친구 한 명 없이 3년을 보냈기에 이때의 사춘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성격을 지금 딸이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나를 똑같이 닮아 있는 거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반항과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3년 친구 없이 외롭게 보내왔기에 고등학교만큼은 친구랑 가까이 지내면서 부모님께 자취 이야기를 꺼냈다가 1주일 동안 폭탄 잔소리에 시달렸고 아버지는 두 번 다시 자취 이야기를 했다가는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줄 알아라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 시골 읍내라 유일하게 입시생을 위한 영어학원이 생겨 농사짓는 부모님을 졸라 친구 따라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으나, 영어학원에는 몇 번이나 갔는지 다섯 손가락 안에 곱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아프다는 핑계로 친구랑 노래방을 가고, 오토바이 타고 바닷가에 가서 mp3에 저장된 곡으로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철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거 같다.

딸이랑 나눈 오늘의 짧은 시간 속의 대화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속 상처를 아물게 하는 가장 간단하게 나쁜 친구들을 버리기로 선택을 했다.

"학교에서 만나도 이야기하지 말고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한데 꼭 이야기하자. 정말 그런 말 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문자 나 편지를 써" 달라며 한 단락이 마무리를 지었다. 그동안 아이에게 꺼진 등불이었다면 지금부터라도 낮에는 아이 곁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햇살이 될 것이고, 밤에는 어둡지 않게 걸을 수 있는 달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24시간 켜져 있는 등대 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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