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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빵의 추억 01화

빵에 어떤 추억이 있나요?

by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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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아침 식사는 어김없이 빵과 함께였다.

이른 새벽부터 일하러 나간 아빠를 제외한 가족들이 낮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당시 신문물이었던 토스터기를 드디어 사용해 볼 때다. 자주색보다 짙은 토스터기에 식빵 두 개를 나란히 세워 넣었다. 옆면에 붙은 버튼을 누르자 기계 안으로 식빵이 사라지고, 양 옆 열판에 시뻘건 불이 맹렬하게 붙었다. 다 구워지면 식빵이 자동으로 나온다는 얘기에 언제, 어떻게 식빵이 나올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토스터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토스터기는 식빵을 뱉어낼 생각이 없어 보이고, 이러다 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에 마음도 검게 타고, 인내심이 바닥 나 안 되겠다 싶어 식빵을 빼내려고 젓가락 한쪽을 들고 토스터기로 종종 다가갈 때쯤…


챙!


노릇하고 바삭한 식빵이 튀어나왔다.

부드러운 식빵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바삭한 토스트에 맛 들려 슈퍼마켓에 파는 넉넉한 식빵을 사서 한동안 구워 먹었다. 큼직한 밥숟갈로 딸기잼을 슥슥 바르면 가본 적 없는 해외에서의 아침 식사를 흉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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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캐릭터 빵이 슈퍼마켓을 점령했다. 국진이 빵과 핑클 빵은 느슨해진 슈퍼마켓 빵의 다양화에 불을 지폈다. 무엇보다도 예나 지금이나 최고 인기스타는 포켓몬 빵이다.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인 띠부띠부씰을 모으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다양한 빵을 먹기 위해서 신상 포켓몬 빵을 사냥했다. 친구들과 그동안 모은 띠부띠부씰을 학교에 가져오기로 한 날, 나는 모아둔 띠부띠부씰이 너무 많아 몇 개만 추리고 추려 책받침에 곱게 붙였다. 친구들이 나를 빵 좋아하는 돼지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미대 입시 수업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엄마와 슈퍼마켓에 들러 하얀 슈가 파우더가 묻힌 도넛을 사 먹으며 인생 최대 몸무게를 경신했고, 대학교 정문에 있던 최애 빵집 르방의 크치크(이름도 묵직하고 아름다운 크림치즈크림빵)에 감격하며 친구들과 공강 시간을 보냈다.


이놈의 빵은 엄마가 되어도 질리지 않았다. 남편이 육아를 온전히 담당하는 일명 ‘자유부인 데이’에 갖고 있는 가방 중 가장 커다란 것을 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지도 앱에 저장해 뒀던 빵집을 순회공연하듯 바삐 돌며 소금빵, 프레첼, 사라다빵, 크림치즈빵 등을 어깨가 빠지도록 담았다. 그 후 며칠은 든든하게 육아를 해낼 수 있었다.


주식과 간식을 가리지 않고, 시간과 국경을 무시하는 동반자.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빵에는 추억이 밀도 높게 담겨있다. 우리가 어떤 빵을 언급할 때 공통된 상을 떠올리듯 추억은 어느 측면에서는 보편적이다. 하지만 육하원칙을 따지고 들면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어떤 빵의 추억이 남았으며, 앞으로 어떤 향기가 추억을 감쌀까? 이 글을 읽는 동안 추억에 공감하며, 여러분만의 다채로운 기억을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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