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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un 18. 2023

정성 어린 정성

시선 23화 [정성] by 색시

주간 <시선> 스물세 번째 주제는 '정성'입니다.



정성 어린 것들에 대해 적어 내려가다, 어린 정성이란 단어가 연달아 떠올랐어. 정성 어린 것과는 말의 느낌이 꽤 다르네. 머리가 크면서 비로소 깨닫는 것들, 주로 타인에게 내가 받고 난 후 시간차를 두고 곱씹으며 감사하는 마음이 증폭되는 게 전자라면 후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하도 어리숙하고 무익했음에 귀여운 구석도 있지만 대체적으론 살짝 민망하고 미안해지기까지 하는… 타인의 정성은 결코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귀한 것이란 걸 아니까 높이 받들게 되지만 나의 어린(어렸던) 정성들에 대해선 어째 평가가 박해진다. 


어렸을 땐 정성의 방향, 방법, 정도 모두 아쉬웠어. 방향은 단순하고 맹목적일 때가 많은데 방법은 편협하고 추상적인 데다, 정도는 늘 턱없이 모자라거나 오버하여 지나친 것 중 하나로 중간이 없었지. 물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는 아직도 한참 어리다고 생각해. 그래서 여전히 돌아보면 아쉬운 결과의 정성이라며 야박한 평가를 하지만 나날이 조금씩은 복잡하고 조건적인, 다양하고 너그러우며 구체적인 중간지점의 정성을 부리려 노력 중이야.


초등학교 입학 전, 동네 친구와 집 앞 공원에서 거의 매일같이 했던 소꿉놀이는 ‘집사람의 정성’을 일분 맛볼 수 있는 행위였다. 흙을 파내어 쌓아둔 뒤 고사리 손으로 조물조물 빚어 만든 동그란 흙덩이를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다. 나뭇잎은 접시고 흙덩이는 주먹밥이야. 자그마한 돌멩이들을 고르게 주워 와 쌓아두면 (정체 모를) 밑반찬도 완성. 다음으로 메인 디시를 만들기 위해 잔뜩 따온 잎사귀들을 돌로 찧어. 손이 초록색으로 물들고 어쩔 땐 옷에 묻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한 상을 차리기 위해서라면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찧고 또 찧은 뒤 흙덩이를 빚을 때보다 훨씬 섬세한 손길로 세모 네모 모양을 잡아 조그만 초록 알갱이들을 만들지. 그러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지곤 했어. 


우리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한창 유행했던 ‘러브장’이라는 노트 기억나? 이게 바로 ‘연인의 정성’이다! 하면서 노트 한가득 지면 위에 펜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애정에 대한 온갖 아이디어들을 집대성해 놓았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한 치매예방/ 글씨 및 미술 공부로 지능 발달/ 킬링 타임 용이 없지만 그 당시 잘 만든 러브장 한 권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집이었어. 반나절을 선으로 이어 그린 실타래(이 선의 끝을 찾는 날, 우리 사랑은 끝나는 거야.), ‘사랑해’로 가득 채운 깜지, ‘너’를 골백번 써놓은 뒤 이 중에서 ‘나’를 찾아보라 하는데 알고 보니 ‘나’가 없는 페이지(어머나, ‘나’를 안 썼잖아? 그만큼 난 ‘너’바께 안 보여) 등…


내가 늘 한 템포 느려서 한창 유행할 당시엔 러브장을 안 만들어 보았지만 20대 언젠가 거의 매일같이 애정을 표현하여 엮은 일기장 한 권을 연인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차였어. 그걸 만들 당시엔 정말 ‘정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일쏘냐 이 난리였는데… 방향 : 나한테 식어가던 연인 / 방법 :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별 도움도 안 되는 무 쓸모의 것. 오히려 가뜩이나 식어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는 걸로 보여 정떨어지는 데에 적극 일조 / 정도 : 몇 달을 매일 적었으니 매우 과함.

(차라리 그림 공부 겸 러브장이나 쓰고 차일 때 돌려달라 해서 개인 소장이나 할걸)


어린 날의 정성을 쏟았던 경험들은 그게 어찌 되었건 축적되어 하나의 관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성을 들이는’ 관성. 그리고 숱하게 겪었던 어리숙함 덕분에 이제는 한결 상대방을 위할 줄도 알게 된 것 같고. 내가 정성을 들였으니 너는 감사해야지! 따위의 철딱서니 없는 마음은 거두어내고 말이야. 방향성을 잘 잡는 게 첫 번째 같아.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지, 진정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위선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에 가장 현명한 정성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겠더라, 진정으로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한다는 건 성경에나 나오는 어려운 일이라는걸.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 들이는 정성이라 해도 그 방법에 따라 결과의 질과 지속성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더라. 내가 원하는 것(혹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하는 노력은 무엇인지, 현재 인식할 수 있는 나의 한계와 타협하거나 지난 경험들에만 기대면 턱없이 부족하니 그것들을 뛰어넘으며 모든 과정에서 내 알량한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을 용기 내어 치워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다 보면 사실 ‘정도’는 지금껏 관성으로 자리 잡은 만큼 조금 오버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왕이면 다다익선?


약 25년 전의 소꿉놀이에서 쏟았던 정성 덕분에 지금 L에게 만들어주는 식사들도 꽤 그럴듯해. 가급적이면 친환경 재료들로 하나하나 공들여 요리해 깔끔한 플레이팅까지 정성을 들이지. 방향은 우리 둘의 건강과 밥상 위에서의 행복을 위해, 방법은 레시피에 충실하면서 나름 획기적으로, 정도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차고 넘치게. 



추천 음반 : Bob Mintzer Big Band [Gently]

죽이는 빅밴드 편곡을 위한 정성의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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