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건 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느덧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습관처럼 고객들에게 돌리는 안부와 감사 문자,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준비한 작은 선물들과 카드들, 멀리 있어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하는 폭풍 카톡들로 12월이 점철되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고, 내 마음은 번잡해 쉬이 잠들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실타래를 푸는 작업은 '힘들어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대목에서 나 자신에게 '기특하다'라고 내 두 어깨를 감싸 안아 주고 싶다. 여기는 한 여름이지만, 새삼, 누군가의 체온이 참 미치도록 그립기는 하다.
지난 보름여 남짓 기간,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돌려보곤 했다. 주말이면 약속이 있든 없든 나가서 5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걷고 나서 집에 온 나는 방구석의 가구를 재배치하고 - 장롱을 혼자 옮길 정도로 힘이 센 나임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 방은 이층인데 나는 양 손에 십 킬로그램 정도 되는 생수병 꾸러미들을 혼자 몇 번 옮길 수 있다. 심히 건강하구나 - 쓸고 닦고 필요와 욕구, 버림을 나누어 종내 쓸어버렸다. 그랬더니 이전에 몰랐던 내 방의 빈 공간이 꽤 많이 생겼다. 더불어 2019년 반 절 정도 쓰다 만 생각 노트도, 잊고 있었던 카드와 엽서,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무자비하게 정리해 버렸다. 비우고 나서 내가 마련한 물건들은 쌈박한 캔들워머랑, 유에스비로 충전 가능한 무드등과, 집에서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잠옷 대용 아래위 운동복 정도다. 1인용 냉장고 안에는 새로 담근 김장 김치로 가득 찼고, 고장 난 체중계를 다시 주문했으며 (어제 배송 온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근 3개월 동안 3킬로그램이 불었다), 급기야 매일 요가 1시간에 이어 오늘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화장실도 잘 가고, 살 수 있고 저축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나와 몇 명의 친구와 가족이 건강하면, 만고 땡이다. 나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 보름 동안 내게 그것들을 어깨에서 내려놓게 만드는 계기가 있기는 했다.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깨달음의 순간은 말 그대로의 찰나이다. 어제까지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것들이 오늘은 명확하게 이유가 보인다. 어떤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는 이유, 원인과 결과, 개연성, 그런 것들이 비겁한 핑계 없이도 정확해졌다. 생업으로 하는 일이 사람과 이야기해야 하고 사람의 기운과 기미를 살펴야 하는 일이라 그것도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오늘 다시 뛰기 시작하면서 발이 참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서, 뛸 수 있는 내 몸과 마음 상태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만났던 '중요할 수 있었던 타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호감이 무관심으로 바뀌니 그 사람의 성정이 바로 보인다. 그 당시에는 안 그렇게 보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자존감이 낮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보고 또 보호 본능을 일으킨 나는, 어쩔 수 없는 오지라퍼였다. 이웃에 산다는 이유로 코로나를 뚫고도 끼니를 챙겨주는 일이 가능했으니까. 아무도 없이 혼자 떨어진 섬에 사는 나에게 문득 알게 된 이웃집 그 남은 이사 갈 때까지 참 많은 밥과 술을 나와 함께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별에 대한 대처법과 마음 상태에 대해 참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많이도 했다. 그 순간의 진실은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에게 향하는 내 마음을 막아서는 무엇인가의 이유는 확실히 알았다. 두 번은 실패하기 싫다는 마음. 좀 더 안전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견고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 나는 내 몸 세포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억 속의 상처들을 굳이 끄집어내서 소독하고 필요하면 꿰매고 봉합하고 잘 드레싱 해주는 그런 작업들. 그 안에 숨기고 싶었던 나의 유치한 모습들이, 소녀다움이, 철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러면 또 어떠랴.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인 것을, 가리고 숨긴다고 사라질 것이 아님을 인정해 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파도 괜찮은 척했던 나이기에, 이런 게 낯설고 서툴다. 연애는 당연히, 너무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그 누구 앞에서 화장과 옷과 화사한 미소로 무장해도 마치 벌거벗고 서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전처럼 괜찮은 척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나의 안위를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고 실천하기로 했다. 혹자는 우습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서른이 훌쩍 넘고 나서야 내 인생이 나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죽기 전에 알게 된 삶의 진실과 진짜 내 모습이 좋은 걸 어떻게 해. 내가 지금 여기에 혼자 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게 된 것이 마음 편한 것을 어찌해. 그걸로 충분해. 나는 날고 긴다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참 열심히 살았다'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인생길을 걸었다. 서러움이 많아서 그것들을 적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도 더 값지게 살 거니까. 비워져 없는 올해를 이정표 살아 인생길 절반 지점을 통과하는 오늘의 내가 남기는 기록이자 선언이다.
사람이 감동할 때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너무나 솔직히 하는 걸 듣거나 읽었을 때, 보았을 때, 거짓이 아닌 노력 앞에서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법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내가 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건, 나의 결점과 부족함과 이기심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만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다. 원인을 알아야 노력을 하고, 그래야 결과가 나올 테니까. 삶의 이유를 알아야,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카페에 들렀는데 이 사진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출구는 있고, 창 밖의 태양은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