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해볼 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차 茶를 좋아했다. 다방을 해야겠다 싶어 부산 시내에 소화방 素花房이라는 다방을 차렸다. 다방은 물장사에 속한다. 물장사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때가 80년대 초반이었다. 범인이 쉽게 갈 수 없는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나 할까. 하루에 수백 개의 찻잔을 수건으로 닦는 일이 주된 일과였다. 그 찻잔들을 닦으면서 내면을 응시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점차 차에 몰두하게 되었고, 다법 茶法의 세계로 나아갔다.
- 조용헌 선생님의 백가기행에서-
밥그릇이 몸의 욕망이 흘러간 유적지라면
찻잔은 마음들이 흘러간 유적지이다.
젊은 시절은 평생 동반해야할 자기의 몸을 먹여살리기 위한
밥그릇에 관해 큰 고민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 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
대부분 보통 일이라고 하는 직업적인 일로 찻잔 든
남자는 전무한 시절 이 었을텐데 찻잔을 들었다는 것은 용기
와 함께 외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찻잔에는 어떤 마음이든 마음이 담겨있다 .
과시의 마음, 아부의 마음, 주인의 마음,손님의 마음,
연인들의 애정, 외로움,이별,기쁨,축하,위로.....
그래서 찻잔을 들여다 보면 세상이 보이고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서 구석에서 찻잔 닦는 것이
세상 어딘가를 정화시킨다는 것도 깨달았으리라.
닦았던 찻잔들을 찬찬히 지켜보고
찻잔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고
천변만화 가지가지입니다
맛이 또 각각이고요
거친 것, 냉정한 것, 바보스러운 것, 샤프한 것...
매력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 사진의 사발들은 손에 쥐면
즉각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에 휩싸입니다
평생을 날을 세우고 살아야 했던
사무라이들이 조선사발에 환장했던
이유가 있지요-
찻잔의 내공이 쌓이지 않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표현을 했으리라.
홍차 찻잔을 들고 도를 깨친 마르셀프루스트가
영국에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찻잔 내공자가
계시다.
80년대 초, 저 시대는 맨 정신으로 살기에는
참 힘든 시대였다. 특히 자기 목소리대로 조용히
사는 사람들에게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부담감을 주던 시대
차는 명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부님의 찻잔은
차 한잔의 여유, 취미를 즐기는 풍류객도 ,
차의 성분, 영양, 실리를 따지는 학자, 상인도,
차의 감성을 즐기는 예술인도,
차를 감별하는 차감 평사도 자신의 길이 아니었다
명상을 통한 깨달음(禪)이었다
올드하지 않고 아름다운 의복 , 내 로망인 스님들의 선방
같은 공간 , 소름 끼칠 정도로 간결하고 품격 있는 찻자리
에 끌려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궁극의 내 찻잔을
찾아서 ..하나씩 문 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가 바라는 건
다법을 각 자의 깜냥대로 해석.
다법을 각자의 시선으로 봐주는 것
사부님의 마지막 멘트이다
이 길은 하나의 길이 아니다.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고
각자 자기 혓바닥을 직접 찻잔에
넣어봐야 알 수 있는 길이다
내 첫번 째 찻잔 여행지는 부산 해운대 숙우회 였다
찻잔 내공은 찻잔 10000개 이상의 찻잔설거지로 부터 시작되는 거라는 것을 배운 곳
*****내공 (內攻)***
훈련과 경험을 통해 안으로 쌓인 실력과 그 기운
본디중국권법의 용어로, 내가(內家)의 공부(功夫)를 줄인 말이다. 호흡을 통해 힘을 내는 기술을 의미하며, 스포츠 과학에서 호흡으로 근력을 높히는 방법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