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 주인에게 찻잔이란-
찻집 문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얀 백자 녹차 찻잔에 엽기적인 빨간 루주 자국을 발견하고 놀랐었다.
그 찻잔을 설거지하면서 그 루주 주인공이 내 단골 패브릭 상점 사장님의 남편이 데려 온
젊은 연인인 것에... 더 놀랐다.
찻집 주인은 찻잔을 손님들에게 내놓을 때 어떤 풍경을 꿈꾼다.
내가 꿈꾼 찻잔 풍경은 선방 스님들의 정갈한 선방이었다.
물론 로망은 어디까지나 로망이지 현실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찻집을 연 건 아니었다
내 나이 사십 대 중반, 인생 이 막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돈 많은 부자가 문화사업으로 벌린 일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소박하게 살면 20년 동안의 교사생활에서 나오는 적은 연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되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용돈과 찻집 유지할 정도의 돈은 벌어야 했다.
손님을 내 마음대로 가려 받을 수는 없었다.
차츰차츰 주인 찻잔을 닮아가 손님도 변해갔지만 나도 흔한 일상으로 받아들였지만 맨 처 음엔 찻잔에 묻어 나오는 루주 자욱은
찻집주인에게 찻잔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나도 모르게 하게 했다. 나에게 했는지 ..찻잔에게 했는지...모르지만 매번 답을 찾긴 찾는데 이 답이 자꾸 바뀌니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정답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이 무미건조했어요. 샘. 그냥 열심히 직장 다니고
승진하려고 노력해서 승진도 하고 애들도 잘 커주었고, 다만 부모님들 건강 염려가 되었으나 그것도
고향집 근처로 발령이 나서 부모님도 보살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모든 게 다
완벽한 일상인데 행복하지도 않았고 지치고 무미건조했어요
근데 갑자기 중학교 동창 ㅇㅇㅇ를 만나면서 무미건조했던 모든 사물에 감정이 생겼어요.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고 ㅇㅇㅇ만 만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샘 날마다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글을 써서 ㅇㅇㅇ에게 톡으로 보내요. 멀 어찌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카페에
가서 종일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감정을 어찌해야 하나요.
이제 막 오십이 된 내 초임지 남제자가 거의 미쳐 상담을 한다.
이 마음을 뒤꼍 대밭에다 가두자니 언제 바람에 흔들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처럼 소문나 직장과 가족 사회에서 퇴출될지 몰라서 초조 겁이 나고
참자니 힘들고...
옛담임 교사일 뿐인 내가 어찌해야 할까?
-늦바람 난 아들놈 등을 후드려 패며
"손자들 반듯하게 키워내고 돈도 잘 버는 우리 며느리 머시가 불만여. 오감혀서 지 분수를 몰러
효도고 지랄이고 필요없으니 너 당장 니 댁 있는 대로 다시 올라가. "
행여 자랑스럽던 아들 가정이 깨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제자의 엄마 코스프레를 해야 할까?
고급언어로 심리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요즘 대세인 오은영 선생님 흉내를 내야 하나?
즉문즉설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닫게 하는 명쾌한 법륜스님 설법을 모방해 봐?
불륜 어쩌네 하면서 사회의 보편적인 틀을 들이대고 가리키는 내 본연의 교사 노릇을
해 봐?
그러나 제자는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일단 자기 맘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횡설수설 쏟아내는 말. 남들이
불륜의 시작이라고 남들이 손가락 할 수도 있는
자기 마음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
차 한 잔 우려주면서. 제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준다. 나는 어쩔 수 없어.
그런데
찻잔이 정말 모든 내 언어와 내 마음의 대체물이었구나 !
찻잔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구나
그럼 우리 차실 만의 찻잔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
꽃집에서 사온 꽃만이 아름다운 꽂꽃이 되는것이 아니라구요?
화병에서 떨어진 꽃잎도 버리지 않고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그 밑에 종이를 깔아놓는 파격,
꽃도 얼굴이 있고. 꽃이 잘리기 전의 앉는 자세, 서 있었던 자세를
유추하고 꽃꽂이를 하라는 등. 집 근처 돌멩이도 오브제가 된다는... 찻자리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배우러 간 첫 수업시간에 럭셔리 사모님의 취미라는 내 꽃꽂이 고정관념을 산산이 무너뜨린 이 도시 독특한 꽃선생님. 유명한 디자인 페어에서도 호텔 로비에 어울릴법한 화려한 발음하기도 어려운 비싼 수입꽃은 거들떠도 안보고 촌 담장가 싸리꽃을 흐트려 놓아서 화제가 되었던 분. 조용히 S가 재벌 사모님이 작가 이름을 물었다나 어쨋다나 뒷담화 스토리가 따라다니는 분. 그 분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촌 것들에게는 촌발 나름의 품격이 있다. 라는 말이었다
히가시아 티하우스 방문은 우리 찻집 공간에 맞는 찻잔을 촌발 나름의 품격을 위해 촌것 나름의
혼 찻잔 세트를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꿈 꾼대로 드디어
황차식 혼찻잔 세트가 완성되었다
당연
이 지역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