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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21. 2022

에필로그

엄마의 마지막 선물


엄마의 장례식 후 마음에 흘러넘쳐 써 내려간 글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모녀 관계로 만나는 인연도 어쩌면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나의 엄마만 죽는 게 아니다.’라는 모든 죽음의 보편성에 기대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세상에 내 엄마는 오직 한 사람이었기에 

그 부재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00일째 되는 날 아침은 오랜만에 평일 미사를 드리며 시작했다. 이날 눈이 얼마나 예쁘게 오던지. 이날 간 성당의 미사 끝에는 매주 수요일에 진행하는 ‘수요 연도’가 있었다. 일부러 맞춰간 것은 아닌데 연도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역시 울 엄마는 복이 많네, 그 복을 잘 알아보는 나도 복이 많네, 생각했다.      


헛헛한 마음. 이렇게 1,000일, 2,000일, 10년이 흘러도 그리움은 나이 들며 더 짙어지지 않을까. 사실 그게 겁이 나기도 했는데 미사 끝 연도가 있다는 말에 그리고 미사 후 성당 마당에 누군가 눈으로 만들어둔 하트를 발견하고 감사해하는 내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났다. 눈 오는 날, 눈이 정말 예쁘게 내린 날, 기쁘게 엄마를 떠올릴 수 있어 춥지만 따뜻했다.      


내가 하는 일이나 처한 상황, 프리랜서로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감사와 신기함에 대해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언제나 “역시 럭키 걸이야, 운이 좋아.”라고 말과 메시지로 전해주었다. 곁에서 그런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내 엄마여서 정말 큰 행운이었다.      


엄마는 7남매 중 막내딸이었고, 엄마 아래로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하지만 언니도, 오빠도, 동생도 먼저 떠나보내 우리 집안의 ‘우 씨’ 사람은 엄마 혼자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며칠 전 만났던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한 줌의 유골이 된다는 것도 꽤 일찍 알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해에 세상을 떠난 오빠가 있었다는 것도 커가며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생명과 살아있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자랐던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고 느낀다. 엄마가 부지런히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표현하고, 행동하던 것은 어쩌면 엄마 스스로도 죽음을, 시간의 유한함을 언제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000일 사이 오빠의 묘를 이장하면서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가 겪었을 자식의 죽음에도 머물러보았다. 1000일은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용기 내어 한 권으로 엮은 기록. 이 기록을 마무리할 때가 되니 ‘엄마가 좋아할까?’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괜찮을까?’ 걱정하고 염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준 지난 편지들을 새로이 보면서 아들이 죽고 난 뒤 엄마는 그 마음을 잘 추스르고 지냈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30대 초반의 엄마. 엄마는 어쩌면 바로 남동생을 낳고 그저 바쁘게 가까운 사람들을 돌보며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는 않았는지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엄마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좀 더 챙기면서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에까지 닿아 이 끝맺음의 글을 쓰는 데 무척 오래 걸렸다.     


엄마는 폐가 좋지 않았다. 언젠가 요가 수업에서 폐는 ‘슬픔’과 연결된 기관이라고 들었는데 엄마의 인생에 크고 작은 슬픔이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닐지도 떠올려본다.    

  

먼 훗날, 엄마를 만나면 물어볼 게 여전히 많다.

엄마의 삶을 통해, 엄마가 남긴 기억을 통해 엄마의 선물을 간직하고 나아간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주간, 가톨릭 평화 방송의 한 이야기 코너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고, 

언젠가 가족 모두가 한 심리 검사를 했었는데, 그 결과지인 책을 찾았다. 

책을 펼쳐보니 그 시작은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 엄마가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편의 시가 추천되어 있었다. 그 시를 끝으로, 긴 시간을 마무리한다. 


공존의 이유 

-조병화, <공존의 이유>, 동문선, 1998


깊이 사귀지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이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지금도 생생한 엄마의 모습. 장례식장 맞은 편 해인 수녀님의 시가 큰 위로가 되었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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