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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May 30. 2024

5,500자로 세상을 만들다

장인이 한 편, 한 편 빚어내는

웹소설은 마라톤이다


웹소설은 매일 연재가 기본이다. 아무리 못해도 주 5일은 연재를 해야 한다. 드라마로 따지자면 미니 시리즈가 아니라 일일극이다.


웹소설은 총 몇 편 완결일까. 매일 한 편씩 연재되는데, 남성향에서는 200화를 가장 기본으로 보고 있다. 물론 더 짧은 웹소설도 있지만 인기 웹소설의 경우는 300~400화를 훌쩍 넘는 것들이 많다.


매니지와 계약을 한 뒤 나도 판매를 염두에 두고 웹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썼던 분량을 다시 퇴고하고, 뒷부분을 계속 집필해 나가고. 그때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게 뭐였을까.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매일 글 쓰는 거? 나름 할 만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이제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

몇 달 동안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거? 이것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지난 세월 문피아에 머리 박아가며 고생해서 그런가, 장편소설 내용을 구상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걸 어찌어찌 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나를 고민에 빠뜨렸던 건?

바로 하루에 5,500자씩 써야 했다는 거다. A4 용지 7~8매 분량을 매일 채워 나가는 것 말이다.



왜 하필 5,500자냐고?


판타지, 현대판타지, 무협 등의 남성향에서 웹소설 한 화는 5,000자로 못 박고 있다. 만일 당신이 쓴 글이 5천 자가 넘지 않으면 매니지 편집부에서 반려를 할 거다. 5천 자가 기본이니까. 특히 무료 소설이라면 모를까, 유료 판매를 할 경우에는 5천 자를 반드시 넘겨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다 보면 딱 5천 자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퇴고를 하다 보면 한두 문장이 없어지기도 하고, 한 단락이 송두리째 사라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아예 글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안전하게 5,500자를 채우라고들 한다. 물론 더 길어져서 6천 자, 7천 자를 적는 작가들도 있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함정이 있다.

단순히 길게 적은 소설을 대충 5~6천 자 사이에 뚝 잘라서 한 편으로 업로드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미지를 모아 큰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 출처: https://www.themoviedb.org/movie/37165-the-truman-show/images/posters?image_language=en



5,500자의 점묘화


앞서 말했듯이 웹소설은 매일 한 편씩 업로드된다. 독자들은 그 한 편을 100원을 내고 사서 읽는다. 그런데 오늘 읽은 내용이 재미가 없고 마음에 안 들었다면? 굳이 내일 다시 와서 또 100원을 내고 다음편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 내용이 재미가 없으면 독자는 내일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웹소설은 한 편, 한 편에 독자에게 줄 큰 재미를 담아야 한다. 그 한 편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야 한다. 하지만 토막 난 콩트처럼 각각의 한 편이 재미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최소 200화 이상, 길게는 400화가 넘어가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를 진행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소설은 그냥 5천 자가 아니라, 재미도 있고 나름의 완성도가 있으면서도 전체 줄거리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5천 자를 매일 적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각각의 이미지를 가지고 점묘화를 그려 커다란 그림을 보여주는 것처럼.


난이도 극상이다. 사람들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미있는 웹소설은 대부분 이런 최고 난도의 묘기를 해낸 작품들이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처음에 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글을 쓸 수 있나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웹소설들이 있었다. 레전드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웹소설들.


원래 목표는 크게 두는 법. 다들 피겨 시작할 때는 김연아를, 바둑돌을 잡을 때는 이세돌을 꿈꾸지 않나. 비록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도 웹소설을 쓸 때는 점묘화를 그리려 노력한다. 한 편, 한 편에 재미를 꾹꾹 눌러 담으면서도 큰 이야기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매일 5,500자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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