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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25. 2021

독일 강아지 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세 가지

누가 누구를훈련하는걸까?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누가 누구를 훈련하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강아지 초보 집사인 나도 이제는 나리가 뭘 원하는지 알겠을 때가 제법 많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이었다. 한참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나리가 내 옆으로 왔다 갔다 알짱거리더니 저 좀 쳐다 보라는 싸인으로 낑낑하는 소리를 내고는 정원으로 나가는 문 앞에 얌잔히 앉았다.
"아따 아줌니 바람 쪼가 쐐게 문 좀 열어 주쇼잉!?" 뭐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나도 모르게 쪼르르 가서 문을 열어 주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까?


햇수로 3년 전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집으로 데려 오던 그때..

왕초보 집사였던 나는 그게 젤루 궁금했다.

과연 이아이가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한마디로 말귀를 알아먹을까?


왜, 가끔 너튜브나 인터넷 어딘가에 떠다니는 강아지에 관한 짤 또는 짧은 동영상 이 있지 않은가? 무심코 클릭한 그 영상들 중에는 강아지에게 냉장고 문 열고 콜라 가져와.. 서랍 안에 엄마 양말 가져다 줄래? 마당 쓸게 빗자루 좀 다오,.. 꽃나무에 물 주게 물 좀 틀어라 등등 사람이 긴 문장으로 말을 해도 척척 알아듣고 복잡한 요구 사항의 미션도 즉각 클리어하는 영특한 천재 견들이 등장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런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우리 집 나리도 잘만 훈련시키면 마당에 꽃심을 때 삽이라도 물어다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옆에 앉아 사람의 말로 이런저런 말도 많이 시키고는 했는데....


우리가 나리를 데리고 간 독일의 강아지 학교 훈데슐레에서는 강아지 들은 사람의 말, 언어를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동작, 그때 그 상황의 느낌, 감정의 변화 등으로 전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나리 그거 가져가면 안 돼!"라고 외칠 때  강아지가 그 단어 들과 문장을 모두 이해해서 라기보다 그 상황 속에서 전해지는 사람의 몸동작 말투와 억양에서 전해지는 감정과 느낌을 이해하는 것이라 했다.


아.. 어쩐지 나리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귀만 쫑긋 거리며 묵묵부답 이더니... 괜히 혼자 알아 듯지도 못하는 말 줄기차게 떠들었군...

요렇게 손가락 하나 들고 앉아하면 곰처럼 커다란 강아지 들고 순딩 순딩 하게 앉았다.*사진출처:AGILA

독일 훈데슐레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세 가지.


독일의 강아지 학교 훈데슐레에서는 1살 미만의 강아지 들을 위한 Welpengruppe 유치반 에서는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려 실컷 뛰어놀게 하고 1살 이상 성견이 된 강아지들 에게 처음 훈련하는 것이 앉아 다.

그것도 말로 앉아, 아 앉으라니까 라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고 절도 있고 간결하게 한마디 "앉아"라고 해야 한다.


내가 훈데슐레에서 나리가 딴짓할 때마다 자주 "나리 앉아, 에이 얼른 앉아 "하며 말을 반복 하고는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의 강아지 훈련사 한스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허리 펴고 손가락 들고 딱 한 번만 정확하게 앉아 라고 말하세요"


그 후..

앉아 를 익힌 우리 나리는 손가락만 펴도 앉고 한국말로 앉아 해도 앉고 독일말로 Sitz 해도 앉았다.

한마디로 손가락 하나 들고 하는 동작이 강아지 에게는 사람의 언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 닿았던 거다.


엎드려 할때 강아지가 충분히 보이 도록 손을 땅으로 내리는 것이 중요 하다  *사진출처:Hunde-Kausnacks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한국말로는 엎드려 독일말로는 Platz.

손을 최대한 땅바닥 쪽으로 내리며 엎드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나리는 앉아는 그래도 빨리 하더니 엎드려하는 데 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훈데슐레에서 다른 강아지들은 다 엎드려를 하는데 우리 집 나리만 하도 안 엎드리려 해서

우리가 직접 엎드리는 것을 보여 몸소 보여 줘야 하나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손에 간식을 들고 엎드려 손동작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나리는 다른 개들 엎드려할 때 멀뚱이 앉아 손안에 감춰진 간식 냄새만 킁킁거리고 맡고는 손을 내리면 눈과 고개만 내려가고 꽃꽂이 앉아 있었다.

엎드려가 뭔지를 이해하는데 까지 오래 걸린 셈이다.

그런데 이 엎드려는 공원도 많고 보행자를 위한 길도 넓고 웬만한 차들은 횡단보도에 강아지와 사람이 있으면 서주는 경우가 많은 독일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독일에서는 모든 개들이 실외 배변을 한다. 그래서 견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루 세 번 이상의 산책을 한다.

산책하다 보면 다른 개들도 마주치게 될 뿐만 아니라 갑자기 길에서 청소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수도 있고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생들이 씽씽이 또는 인형 유모차 들을 끌고 지나가기도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핸드 케리어를 닮은 시장용 가방을 끌고 옆을 지나갈 수도 있다.

강아지들은 그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것들에 쉽게 놀라기도 흥분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때로 앉아 뿐만 아니라 엎드려를 시켜 놓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자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젠가 풀밭에 나리가 뜨끈한 것을 내어 놓았는데 봉투에 담으려니 방금 나리가 앉았던 풀밭 근처 요기조기 몇 군데에 개똥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나리에게 은도끼 금도끼처럼 "이것이 니똥이냐?"물을 수도 없고 다 치운 날이 있었다.

그때 초등학생 하나가 씽씽이 타고 우리 옆을 휙 하고 지나갔는데 흥분한 나리가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가는 바람에 개똥 주워 치우려다가 개똥 위에 앉을 뻔했다.

그때 이후로는 나리가 거사를 치른 후 치울 때 꼭 엎드려를 시켜 놓는다.

저렇게 손바닥을 보이며 기다려 하는 것은 강아지 보다 사람이 더 인내심을 가지고 해야 하는 훈련이요 작업?이다.*사진 출처 :Hundesport Nubi


그리고 세 번째인 기다려...

손바닥을 강아지가 보이게 들어 보이고 한국말로 기다려 독일말로 Blieb. 한다.

사실 이 기다려는 아직도 훈련 중이다.

우리 집 나리는 간식이 먹고 싶은 마음에 앉아. 엎드려는 자동으로 하다가도 앉은 상태에서 기다려하면 의젓하게 있다가도 등을 돌림과 동시에 졸졸졸 쫓아오기도 하고 우리가 손바닥을 들고 뒷걸음질하며 기다려할 때는 그 갈색의 동그란 눈을 끔뻑 끔뻑 쫑긋한 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치 보다가 어느새 쪼르르 옆에 와서 조르기도 한다.


매주 토요일 이면 가던 훈데슐레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친구들 만난 지도 오래된 나리는 오늘도 산책길에 만나는 다른 강아지 들과 놀고 싶어 몸살이 난다.

산책하다가 아무리 손바닥으로 강풍을 날리듯 절도 있게 기다려를 해도 나리가 본 척도 안 하고 팔랑 거릴 때가 있다 바로 맞은편에서 다른 강아지가 산책을 나온 것을 본 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강아지들도 연령대가 비슷하거나 서로 맞아야 놀지.. 어떤 강아지 와는 서로 쳐다만 봤는데도 으르렁 거리거나 너무 연로한 강아지라 인사만 하고 지나가야 할 때도 있으니.... 견생도 코로나 시대에 덩달아 외롭다.

어서 코로나가 지나 가서 함께 산책하던 나리의 훈데슐레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강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나리와의 일상은 크고작은 수많은 시행착오 들을 통해 차곡차곡 쌓인 경험으로 무지 했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누가 누구를 훈련하는지 때로는 헛갈리기도 할 만큼 이제는 서로를 알아 가고 서로에게 적응이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젠 쳐다 보는 것 만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살짝 눈치 챌수 있을 만큼 말이다.

지금 이순간 저만치 에서 바닥에 턱을 고이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는 나리는 언제나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나리!" 하고 불러 간식을 주려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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