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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26. 2023

솜사탕 같은 털과의 전쟁


털갈이 대첩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때가 되었다 집안에서 뭉게구름을 타고 다니는 것 같은 그런 때…

가급적 검은색 또는 짙은색 옷을 피해야만 하는 때…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옷 여기저기에 니트도 아닌데 하얀 보푸라기처럼 나리의 털이 많이도 붙어 있는 때...

하루종일 손에 청소기와 동글동글 말려 있는 테이프 일명 찍찍이를 창과 방패처럼 들고 다녀야 하는 때..

허리 숙여 집안 구석구석 한참을 치우고 나서 허리 펴고 섰는데 한 번도 치운 적 없는 것처럼 어느새 크림색 나리의 털이 수북 해도 놀랄 것 없는 때...

그렇다 바로 우리 집 똥꼬 발랄한 멍뭉이 나리의 털갈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때를 나리의 털갈이 대첩이라 부른다.


전쟁 같은 나리의 털갈이 시작은 언제나 머리카락 한올 빠져나온 듯 뜨개질 용 털실 털뭉치에서 털실 하나 삐어져 나온 듯 그렇게 시작된다.

나리의 크림색 털이 삐죽삐죽 올라 와 있으면

그 털들을 빗질을 해 주거나 손으로 한 올 한 올 살살 뽑아 주고 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솜사탕 같은 나리의 털이 온 집안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다.

아기 강아지 나리를 우리 집으로 데려 왔던 그때는 강아지가 털갈이할 때 털이 홀라당 발라당 몽땅 빠지는지 몰랐다.

물론 강아지들이라고 모두 이렇게 전투 적으로 털갈이를 하지는 않는다.

견종에 따라 천차만별 털을 잘라 주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털이 거의 없는 아이들도 있고 이렇게 다시 태어나듯 빠지는 아이들도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그중에 우리 집 나리는 1년에 두 번 정말 대대적으로 털갈이를 하는 견종에 속한다.

그때마다 거의 한 달가량 온몸의 털을 다 내어 놓는다

나리가 그 작은 발로 톡톡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곳은 집안 어디나 하얀 눈이 내리듯 털이 떨어진다.

현관문 앞 커튼에도 소파 옆과 의자 밑에도 나리가 턱을 올려놓거나 와서 기댔던 우리 바지 위에도 네버엔딩 하얀 털이 휘날린다.

또 강아지 들은 자주 습관적으로 온몸을 털어 대는데 그때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또는 콘서트 장에서 무대 장치로 가짜 눈이 쏟아지듯 순식간에 하얀 털들이 공중 부양을 한다.

담아도 담아도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이렇게 털갈이를 할 때는 별수 없다 무한 반복 빗질을 해주고 그저 계속 쓸고 닦고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이미 빠져서 몸에 걸치듯 매달려 있는 털들도 그리고 빠지려고 준비 운동하고 있는 털들도 빗질 한방이면 뭉터기 뭉터기로 거둬 들일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움직이는 강아지를 그것도 빗질을 하기 위해 앉혀 놓기란 쉽지가 않다.

잠깐 사이에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는 나리를 꼬셔서 무사히 빗질을 마무리하려면 2인 1조로 협업을 해야 한다.

손 빠른 남편이 빗을 들고 요기조기 빗질을 하는 사이 나는 나리의 눈앞에 맛난 간식을 들고 있다가 타이밍 좋게 아주 조금씩 떨어 트려 준다.

그러면 나리는 간식받아먹는 재미에 온신경을 내 손에 맞추어 놓고 언제 하늘에서 간식 내려오나 기다리게 된다.

그사이 남편은 순식간에 한 무더기의 털을 모은다.




5년의 내공

잔뜩 모인 나리의 하얀 털들을 쓰레기봉투 가득 담아 버릴 때면 간혹 엉뚱한 상상을 하고는 한다.

사람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오리 잡아 오리털 이불 오리털 점퍼가 아니라 개털 이불 또는 개털 점퍼면 어떨까? 같은...

이렇게 많이 빠져 버리는데 얼마든지 공짜로 나눠 줄 수 있는데 말이다.


매일 매 순간 그렇게 털이 빠지고 또 빠지면 나리는 어느새 몰라 보게 홀쭉해진다.

불쌍해 보일 만큼 헐벗은 모습이 되어야 나리의 털갈이는 끝을 보이게 된다.

이건 마치 두껍고 따뜻한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얇고 샤방샤방한 봄 옷으로 갈아입는 것 같다고나 할까?


가벼워진 나리는 집안 구석구석에서 변함없이 뒹굴거리다 콧잔등을 긁어 주면 좋아하고 심심하면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한숨을 폭폭 쉬어 가며 심심해 겁나 심심해를 시전 한다.

또 그러다 심신을 안정케 해 준다는 클래식 음악이라도 틀어서 해드폰이라도 씌어 주면 멀뚱히 듣다 눈을 가늘게 뜨고 졸고 앉아 있다.

그래 나리 너의 취향도 뽕짝이지? 하며 쿵 짜자 쿵작하는 트로트 메들리를 틀어 놓고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하는 노래를 손동작까지 해가며 따라 부르면 나리는 못 볼걸 봤다는 표정으로 계단 옆 복도로 도망가 버린다.


이 못 말리는 네발 달린 털북숭이 와 함께한 지도 5년이 되었다.

솜사탕 같은 하얀 털이 무더기로 빠져도 당황하지 않고 잽싸게 치울 수 있고 함께 산책하다 나리가 멈춰 서면 그전에 풀 뜯어먹고 토하고 싶어 그런 건지 앞쪽에서 나타날 강아지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다른 골목으로 가보고 싶어 그런 건지 구분이 가능하다.

나리도 우리가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안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한다.  


5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내공이 생긴 셈이다. 지금처럼 하얀 털을 휘날리며 가끔은 떼도 쓰는 나리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글을 쓰다가 나리가 뭐 하나 궁금해서 나리하고 불렀더니 쫄랑 거리며 와서 옆으로 기댄다.

츄리닝 바지에 하얀 털이 뭉터리로 묻는다 나는 옆에 놔둔 찍찍이를 현란하게 굴려 털을 제거한다.

혹시나 간식 주려고 불렀나 싶어 왔던 나리는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침대로 돌아가 발라당 눕는다.

하얀 털이 침대 가득 후드득 떨어진다.

조마간 청소기 들고 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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