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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Apr 13. 2024

제주 다랑쉬 오름

깊은 슬픔을 지나

다음날 아침을 먹고 다랑쉬 오름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씨는 맑다. 둘레길을 걸어 오름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이다.


 

숙소 주인장이 알려준 대로 걸어가고 있는데 산책하는 부부를 만났다.


"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은발이 보기 좋은 남자분이 묻는다.

"oo시에서 왔는대요..."

대답하고 보니 질문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답변인듯하다. 그분 표정이 영...

"oo펜션에서 오는 중이에요"

다시 대답하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펜션 주인을 잘 아는 듯 말한다.


"어디를 가시는 중인가요?"

"다랑쉬오름에 올라가려구요"


많은 여행자들이 다랑쉬 오름 올라가는 입구를 못 찾는다고 하면서 샛길 들어가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우리에게 어디를 가는지 물어본 이유도 잘못 갈까 봐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분들을 못 만났으면 다랑쉬오름 정상을 못 찾을뻔했다. 배려가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랑쉬오름 둘레길로 들어서는 샛길을 알려줬는대도 우리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헤매기는 했다.

잘못 들어선 중산간의 숲 속에서 미세하게 봉우리가 진 곳 몇 개를 모르고 밟고 지나갔는데 기분이 묘했다.


혹시 이 아래 오래전 그날에 누군가 비통하게 묻힌 건 아닐까 하는 서늘함과 미안함...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샛길로 올라가서야 둘레길이 나타났고 그 길을 쭉 걸어가니 다랑쉬오름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왔다.



정면에 보이는 것은 큰 오름이다.

겨울 속의 봄처럼 펼쳐진 것은 제주 월동 무이다. 비타민C가 많고 맛이 좋아 겨울의 보약이라고 한다.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제주 날씨, 비는 내리지 않고 비를 품은 바람만이 불어온다.


걸을 때 이런 바람은 좋다.

머리를 뒤로 날려주어서 이마가 시원하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성긴 억새 사이로 풍경이 보이고, 오름과 초록의 무밭과 노란빛의 밭과 흐린 하늘에 맑고 차가운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인데 시원하다.



샛길의 덤불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걷기 편한 아름다운 길이 나온다. 

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갑자기 우리 앞에 펼쳐진 길. 


아무 데나 털썩 앉아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신다.

이 사소한 일이 큰 해방감을 준다.


걷다가 마시는 따뜻한 차는 상상 이상으로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시 길을 나설 새로운 힘을 준다.



삼나무길에 나무 냄새와 숲 냄새가 가득하다.


놀랍도록 호젓한 이길, 나무들이 서로 만나 아늑한 길을 만들어 주었다.



다랑쉬오름 입구에서 가파른 나무 계단을 헉헉대고 한참 올라가니 중간쯤 쉼터가 나왔다.

탁 트인 풍경과 멀리 바다와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맞은편에 '아끈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아끈은 제주도 말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정상에 있는 키 큰 억새숲에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겨울 억새숲은 깊다. 아끈 다랑쉬오름 너머에는 세화, 종달, 하도, 성산 등의 바닷가 마을이 있다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본 제주 동쪽 바다의 모습.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제주의 들판과 바다와 섬이 있다.



제주 자연의 조화로움이 다 들어있는 아름다운 장면.



다랑쉬 오름 분화구.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여 다랑쉬(도랑쉬, 달랑쉬)라 부른다고 한다.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본 분화구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대 할망의 밥그릇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랑쉬오름은 아름답고 화산체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오름의 남쪽에는 4·3 사건으로 사라진 '다랑쉬마을(월랑동)'과 '다랑쉬굴'이 있다.



오랜 세월 분화구 옆을 지킨 소사나무.


다랑쉬오름 분화구 남측의 소사나무 군락지는 제주도 최대의 규모로 알려져 있다.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열매는 8~10월에 익는다.


다랑쉬오름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분화구에서 공중으로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산재, 화산암이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화산체(분석구)이다.


다랑쉬 오름을 내려와서 잃어버린 마을과 다랑쉬굴 4·3 유적지에는 가지 못했다. 두려웠다.

몇 년 전에 갔다가 오래도록 그 참혹함에 가슴이 아팠었다.


잃어버린 마을과 다랑쉬굴 4·3 유적지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이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굴 입구를 봉쇄,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이곳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 4·3 연구소' 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에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다.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 만인 5월 15일에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다에 뿌려진 후, 유물들만 그대로 남긴 채 1992년 4월 7일 입구가 봉쇄되었다.


이 참혹한 역사의 죗값을 저지른 자들은 받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슬픔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위로받고 치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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