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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n 12. 2024

호텔 헤르메스 방향 전환에 대한 변

-<호텔 헤르메스> 7화. 



<호텔 헤르메스>는 2019년, 조급하게 BOOKK로 출간해 버린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에서 쓰고 싶었지만 차마 쓸 수 없었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쓰겠다'는 결기를 내보이면서 새롭게 시작한 연재 브런치다. 그 선언이 불과 한 달 반 정도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쓰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가 말과 생각으로는 수백 번도 더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아직 커다란 돌덩이 같이 남아있어서 새로운 길을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소재였고, 그 돌덩이는 쓰는 것으로만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거운 짐과 같고 치명적인 독과 같은, 영혼을 갉아먹는 오래 묵은 체한 감정을 소설 형식으로 토해내서 고발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가벼워질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엔진 오일을 갈고, 타이어도 빵빵한 새 것으로 교체하고, 시동을 거는 동안, "작은 기쁨"이 찾아왔다. 그것은 우연히 이웃이 된 라얀 작가님께서 우연히 나의 졸작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를 찾아내어 읽어주셨고, 작가님 연재 브런치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를 통해서 내 책을 낭송을 해주시는,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다른 글에서 쓴, 다친 콘도르가 구조되어 재활 치료를 받고 다시 비행을 한 것처럼, 라얀 작가님이 먼지 쌓인 어두운 창고에 있던 내 책을 발견하고 읽어주시는 동안, 마음속 돌덩이, 쓰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무거운 바위가 녹아내린 것 같다.



라얀님께서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를 읽으시면서 느낀 감정을 쓰신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터스텔라 성간 저 멀리 옛 오렌이 현재 오렌에게 라얀이라는 반사체를 통해 조우하게 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물론 종종 건빵 별사탕 같은 공통분모를 발견하고는 으적 으적 씹어먹는 재미도 있지만... 뭔가 비릿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라얀님이 쓰셨듯이 그 목격의 순간, 아직 남아있던 감정의 오물 덩어리가 깨부숴 지고 녹아내려 광활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으로 흩어진 것만 같다. 이제 쓸거리가 없어져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스럽게 지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날아가버린 이야기를 붙잡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호텔 헤르메스, 비릿한 악취 진동하는 이야기를 전달할 메신저로 설계했던 육중한 건물이 붕괴되고, 그 자리에 메시지만 남았다. '헤르메틱'이다.



헤르메틱은 호텔 헤르메스를 쓰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가치 있고 즐거운 일들로 나를 안내했다. 그것은 따로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일이 아니라, 호텔 헤르메스가 붕괴된 파편의 변형이다. 

앞의 글에서 갤러리나 공연장 같이 보이는 로비에서 본 커다란 스마일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을 때, 작은 조각의 퍼즐로 맞물려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던 스마일...

호텔 헤르메스가 큰 괴물이었던 것만큼 그 몸체가 붕괴된 파편도 무수하며, 그 파편이 변형된 조각들도 많다. 그 조각이 바로 거대한 스마일을 이루는 작은 퍼즐이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선물과 혜택과 기회와 행운과 사랑을 받았다. 더는 흉터를 들여다보면서 아픔을 기억해 내고, 비린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한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미래의 사람들에게 내가 세상으로 부터 받은 별사탕 같은 달콤함을 나눠주려한다. '달콤. 사랑. 화합'을 주제로 모든 도움과 배려에 응답하려 한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는 동안 꿈에서 보인 유일한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 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호텔 헤르메스'는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려고 한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



호텔 헤르메스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좋듯이, 더 이상 내 글이 읽히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쁨으로 충만하다.

라얀님의 멋진 목소리로 읽어주시는 연재 브런치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를 통해 내 글이 아닌, 또 다른 많은 작가들의 글과 삶이 위로받고 힘을 얻는, 귀한 재활의 성소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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