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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녕 Mar 15. 2023

보호자의 나날

from 서울. 병원

 “비상 상황 발생, 비상 상황 발생.”      


 삐용- 삐용-. 한창 지우가 흥미를 붙인 자동차 장난감에서 울리던 알람처럼, 속에서 비상등이 켜집니다. 지우가 열이 나요. 처음 보는 체온계의 빨간 불빛. 38도를 넘은 열이 몇 시간째 떨어지질 않네요.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자칫 늦었다간 주말에 응급실 밖에 갈 곳이 없겠다 싶어 늦은 시간까지 열어둔 소아과를 찾아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올라요. ‘이게 말로만 듣던 돌발진인가? 드디어 지우도 코로나에 걸린 건가? 요로 감염? 감기? 장염?’ 아기 띠도 내버려 둔 채 두 팔로 아이를 안아 들고는 병원 대기실에서 새파랗게 질려갑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혹시 너무 늦게 병원에 온 건 아닐까? 진작 열이 났을 때 병원을 올 걸 왜 머뭇거렸을까.’ 조급한 마음은 앞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어수룩한 자신을 질책합니다.      


 “첫 아이시죠?”     


 진료를 보신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이 문장은 지난번 종합병원에 갔을 때도 들었던 말이네요. 열이 난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아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고, 해열제로 열이 떨어지지 않거나 추가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다시 병원에 오라 하십니다. 아기에게 열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들었기에 전문가가 내려준 진단에 안심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너무 지나치게 걱정을 했나 멋쩍음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어요. 몇 달 전 지우 목소리가 유독 갈라져 정밀 검사를 받았을 때도 같은 말을 들었죠. 아기는 많이 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대 결절이 온 거라, 좀 더 성장하며 성대가 단단해지면 자연스레 좋아진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첫 아이냐 묻는 이유는 경험이 없고, 걱정이 조금은 과하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어째요. 모르니 최악의 경우만 떠오르고 마음이 불안한걸요.     


 지우를 곁에 둔 뒤, 세상에 둘도 없는 걱정 부자가 되었습니다. 머릿속 아기의 이미지는 툭하면 부러지고, 훅하면 날아가는 한 줄의 마른국수 같은 존재였죠. 기온이나 습도가 조금만 낮아도, 바람이 갑자기 불거나 조금만 몸이 흔들려도 큰일이 날 듯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둘러 감싸고, 모든 위험 요소로부터 보호하느라 애를 씁니다. 지우가 태어난 뒤 소아암 후원을 시작했는데요,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나 이후로 앱을 사용할 때면 아동 후원 광고들이 끊임없이 뜨더라고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 자꾸만 눈에 보여 어느새 몰입하게 됐고, 과한 걱정과 상상은 혹시 모를 상황을 가정하는 데까지 이어져 자꾸만 좋지 않은 경우를 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지우가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걱정 씨앗에 살이 붙었고, 점점 그 작은 덩어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을 불려 안절부절못하던 저를 깔아뭉개 버렸습니다. 주저하다 늦은 것보다 병원에 쫓아가 한번 민망함을 견디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어요.     


코가 까졌어요. 짧은 순간, 작은 사고들도 종종 일어나죠.


 태어나 경험하지 못한 중압감. 아기는 아프다 명확히 표현이 불가하고, 그 불편함을 알아채는 건 오롯이 저, 양육자의 몫이에요. 혹여 작은 신호라도 놓칠까 노심초사, 대처가 미숙할까 미리 두렵습니다. 절대적으로 아이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사람 또한 저뿐이니까요. 누군가의 건강 문제로 이리 가슴앓이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제 몸이 아니니 애가 타고, 그게 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녀석이라 몹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우가 10개월 되던 때,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수술이라 이름 붙이기도 거창한 시술에 가까웠지만, 아기라 전신마취를 해야 했고 마취를 위해 여러 검사를 받아야 했었답니다. 그날 써뒀던 일기가 있어요. 지나고 보면 그리 큰일도 아니었는데, 그땐 나에게만 찾아온 고통처럼 마음이 꺾였고 힘에 부쳤어요. 흔히들 아이 대신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잖아요. 깊이 공감하지 못했던 감정을 그제야 알아채 절실히 통감했죠.      


  ‘밤새 이어진 금식으로 제때 분유를 손에 넣지 못한 녀석은 집을 나서는 길부터 이미 울음이 터졌다. 젖은 목소리에 원망이 가득. 영문도 모른 채 배고픔을 견디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아직은 한 치 앞 분간도 어려운 어린 생명. 아이는 병원 입구에서 이마로 갖다 대던 체온계에도 입을 내밀어 구강기 욕구를 마음껏 채우려 한다. 그 모습이 그리 측은했다....(중략)... 회복실로 아이를 찾아간다. 키 큰 어른들 사이에 누워있는 하찮은 몸집. 깨어나 정신없이 몸을 뒤집으며 소리를 지른다. 난감해 보이는 의료진도 함께. 얼른 침대로 올라 아이를 안았다. 작은 몸에 이리저리 붙여둔 선들을 피해 가며 가슴을 토닥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이 당한 일에 꽤 억울했겠지. 생면부지 사이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엄마를 찾았을까? 조심히 조그만 손과 발을 어루만진다. 시끄러워진 녀석의 속이 차분히 잦아들길 바라며 진심으로 다독인다. 꽤 시간이 지난 뒤, 아이의 발목에서 뽑아낸 바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속이 시원해졌다.  


   

 덩달아 비웠던 뱃속이 허하다. 현관 앞, 쌓인 택배 상자를 그대로 두고 집으로 들어간다. 녀석은 일찍 잠이 들었다. 퇴근한 남편도 곁에 누워 함께 단잠에 빠졌다. 어느새 집안으로 들여진 상자들. 개중 비눗방울이 눈에 띈다. 아픈 녀석을 위해 이번만큼은 망설이지 않고 물건을 샀다. 포장을 뜯어 개수대 앞으로 가, ‘후-’ 동그랗게 입술을 모으고 바람을 분다. 퐁퐁 떠다니는 작은 방울. 아이가 보면 참으로 좋아할 테지. 조금 더 숨을 모아 방울을 분다. 종일 내쉬고 싶던 한숨을 이제야 마음껏 뿜는다. 알지 못할지라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울지 않겠다 다짐했던 마음을 오색 빛 방울로 토해낸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비눗방울들이 공중에서 ‘팡’하고 터져버린다. 숨이 트인다. 부엌 한쪽에 난 작은 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에게 말한다. 오늘, 참 잘 견뎠다.’   

   

  병원이라는 장소가 주는 두려움이 있어요. 아이와 함께니 근심에 더해 미안함까지 보태집니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이 작고 약한 녀석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자신을 꾸짖는 거죠. 아이는 양육자가 염려한 것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존재이지만, 키우는 이의 마음은 여전히 굳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객관성을 잃고 행동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배 속에 있던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아 속이 탔는데, 밖으로 꺼낸 뒤엔 눈에 보여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눈앞에 놓인 곳곳마다 안심이 되질 않는다면 조금 유별난 걸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선 늘 같은 결의 걱정을 반복하고 살 듯합니다.      


 모든 양육자가 같은 마음일 거라 위안 삼아봅니다.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염려하여 그 마음엔 결코 지나침이 없다는 걸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을 거라 믿어요. 한 번씩 아이 건강 문제로 마음이 너무도 어지러울 땐, 여유를 가져도 된다 스스로 다독이기도 해요.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반복하며 자신을 보살피는 거죠. 일상을 흔드는 지나침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쉽지 않음을 알지만, 때마다 불안 대신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봐요. 좋은 것만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람을 되뇌죠. 아이에게 양육자는 온 세상이라는데, 아슬아슬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지럽기만 할 겁니다. 마음 졸이는 걱정보단, 아이는 언제나 씩씩하게, 곁에서 행복하게 커갈 거라는 믿음이 우선일 거예요,     


 어제저녁, 급히 밥을 먹다 교정 유지 장치가 떨어져 버렸어요. 오른쪽 아랫니 쪽이요. 순간, 저도 모르게 불뚝 화가 솟아올랐습니다. 쉴 틈 없는 하루에 나로 인한 변수는 절대 달갑지 않거든요. 지우의 양육자가 된 뒤, 소아과로 뛰어가긴 쉽지만 웬만한 고통 아니고선 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네요. 실은 결혼 전에 했던 큰 수술 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함에도,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2년째 병원에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최고라 절절히 깨달았던 그때의 감정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말이죠. 오늘 아침, 벌어진 일교차 탓에 맑은 콧물이 시작된 지우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어요. 증세가 심해지기 전 얼른 감기 기운부터 잡아야겠단 생각에 세수도 건너뛰고 약을 받아왔죠. 서둘러 진료를 받아 홀가분한 마음에 속이 시원합니다. 떨어진 유지 장치가 여전히 입안을 찔러대고 있는 와중에 말이에요. 갖은 생각이 스치며, 잠시 멍해집니다. 전 왜 이러고 있을까요? 더 많은 상념이 갖은 괴로움의 구렁으로 절 몰아넣기 전, 해결을 봐야겠습니다. 내일은 어떻게든 치과에 다녀와야겠네요. 야간 진료가 가능하다면 말이죠.



영국 이야기는 @mylittelca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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