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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Aug 30. 2017

말없는 너의 눈동자를 통해 처음 배운 것들

Essay


우리 아버지는 충북 제천의 산 아래, 작은 집에 사신다. 터가 높은 곳이라, 집 앞 시멘트 마당에서 내다보면 주변이 온통 산이다. 봉오리마다 구름 조각이 걸려있고, 멀리 보이는 능선에는 곧 폐쇄될 기찻길로 드문드문 열차가 오간다. 엉덩이 밑 플라스틱 의자의 불편 따위는 잊고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복숭아 뼈가 간지러워 내려다보면 네가 있다. 풍산개의 피가 섞인 수컷, 흰 곰 같은 개. 이름은 ‘산이’다.


(중략)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종종 녀석의 눈동자가 떠올랐고, 그리움이 느껴지던 때에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에게도 느껴본 지 오래된 종류의 감정을, 말 못 하는 개에게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더 본질적인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산이의 눈과 내 눈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말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더 깊이 사랑하고 교감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하게 됐다.


산이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머어마한 오독일 지도. 그렇지만, 최소한 녀석을 이해하려 시도했고, 무언가를 느꼈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최근 몇 년간의 경험 중 손에 꼽힐 만큼 특별했고, 경이로웠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확장됐다는 사실도 잔잔한 기쁨을 줬다.


언젠가 친구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본 적이 있냐고 했다. 생각만 해도 쑥스럽다며 손사래 쳤지만, 해보고 싶어 졌다. 언어와 체온으로 다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일부를, 눈동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은 강아지에게 그랬듯 말이다.


2017년 8월


 책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 * * * *


브런치북 <우린 이토록 다르지만 사랑을 해>를 얇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의 일부를 읽어도 좋지만, 책장에 두고 보아도 좋은 전문을 실었습니다. 연애보다는 사랑에 관한 글, 무엇보다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권해드려요. 언제나 사랑하세요.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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