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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un 05. 2024

하늘빛

_ 풍경 같은 사람


# 하늘빛
  : 맑은 하늘의 빛깔과 같은 연한 파란빛.



추억을 품고 있는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온한 마음을 선물합니다. 오랜 풍경 같은 사람. 그를 생각하면 하늘빛이 떠오릅니다. 스물 하나의 어느 날. 늦어도 자판기 커피 한 잔은 꼭 마시고 강의에 들어가던 나는 그날도 아침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셔틀버스가 도착했는데 왠지 그가 내릴 것 같았어요. 아니 그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늘색 폴로티를 입은 그가 차에서 내리다가 2층 창가에 있던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거예요. 그리고는 잠깐만 거기 있으라고 외치더니 단숨에 뛰어와 백팩에서 손 편지를 꺼내 건넨 후 "난 이만 늦어서." 하며 그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청아한 하늘과 청량한 하늘빛 미소. 그날의 추억은 그가 군대에 있는 동안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보다 둘이 있을 때 더 넓은 바다 같이 나를 지켜주었고, 커다란 이벤트는 없어도 매일을 빛나는 하루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도서관 어느 서가의 책 사이에 편지를 끼워 두어 누가 가져갈 까봐 뛰어가게 만들고, 춘천 가는 기차 안에서는 매일 쓴 엽서들과 함께 케니 지의 'SUMMER' 레코드를 붉어진 볼로 건네어 풍선처럼 부푼 마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조교 일을 하던 나의 점심시간에 맞춰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먼 곳까지 다녀오던 마음, 갑자기 종로에 나왔다는 나를 만나기 위해 어찌나 땀 흘리며 뛰어 왔던지 공원 벤치에 도착하자마자 드러누워 숨을 고르던 모습, 커다랗게 사랑한다 외치던 한강대교의 밤. 그는 그 시절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7년을 함께 하며 오랜 친구는 소중한 연인이 되었고, 어느새 혼자 살아온 날보다 둘이 같이 걸어온 길이 많은 날들을 보내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친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소탈한 웃음으로 품어주던 바다 같은 사람에게 나는 이제 또랑 같을 때가 있다며 놀리기도 하지만, 그 맑고 순수한 사람이 밖에서 얼마나 많은 버티기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고 있나 생각하면, 가장으로서 얼마나 커다란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가 헤아리면 뾰족해졌던 마음이 동그래집니다.


첫사랑이 반려자가 되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같이 나눈 풍경이 많기에, 태풍 같은 수많은 밤을 함께 견뎌내어 나눌 말이 많기에, 고요히 걷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그와 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에, 살아감의 고비마다 고개 들어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루만 함께 살아도 더 큰 소망 없겠다고 빌었던 밤이 아직도 선연한데 이렇게 하루하루 매일 걸을 수 있다니 이번 나의 생은 하늘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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