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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아웃되지 않고 글 쓰는 비결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노르웨이의 숲>과 <1Q84>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는 대가입니다. 그는 장편소설뿐만 아니라, 단편소설 및 에세이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소설가로서의 그가 지닌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두 작품이 한국에도 나와 있습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2016)입니다. 그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이 두 작품 가운데, 오늘의 주제인 ‘습관’과 관련해서 다룰 쪽은 후자입니다. 물론 이 책은 본 리뷰의 첫머리를 채워줄 손님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그가 30년이 넘게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습관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에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라는 원칙을 정해놓은 뒤, 그보다 더 쓰지도 덜 쓰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더 쓰고 싶더라도 멈추고, 작업이 잘 안 되는 날에도 20매는 꼭 채운다고 합니다.(150쪽) 

할 엘로드가 <미라클 모닝 밀리어네어>에서 했던 ‘확신의 말’이 기억나시는지요? ‘확신의 말,’ ‘목표,’ ‘주문’ 그 어떤 것이라도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일 200자 원고지 20매’라는 목표에서 추상적이거나 애매한 부분은 없습니다. 숫자나 날짜가 분명하지요. A4용지 4-5페이지 분량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대가에게 많은 분량일까요, 아닐까요? 그는 하루 최대치로 쓸 수 있는 분량을 목표로 정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가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보기 좋게 분실했지만 말이죠. 당시 저는 “의지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만트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작업이 잘 안 되는 날에도 20매는 꼬박 채우고야 마는 하루키의 끈기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삘 받은 날’에도 글을 더 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문학의 신’이 강림한 날에는, 국수 뽑아내듯 글이 술술 풀려나오는 날에는 쓸 수 있는 데까지 써야 하지 않을까요? 


비트 제너레이션의 기수였던 잭 케루악(1922-1969)을 아시는지요? 그의 대표작인 <길 위에서>(민음사, 2009)와 <다르마 행려>(시공사, 2015)를 저는 사랑합니다. 그런데 소설가 김연수에 따르면, 잭 케루악은 1951년 4월 2일에서 22일까지 3주 동안 구두점도 없이 타자기에 끼운 36미터 길이의 종이에 <길 위에서>을 썼다고 합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두 권의 번역본 분량을 합치면 600페이지가 넘지요. 케루악의 작업방식은 ‘신 내림’ 받은 천재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충족시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와 반대로 매일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처럼 꾸준하게 씁니다. 그가 이런 집필 습관을 지니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본인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150쪽)


여기서 하루키가 말한 ‘규칙’은 곧 ‘규칙적인 습관’입니다. 이 습관을 어기게 될 경우, 삶의 다른 영역에 투입되어야 할 힘과 시간이 그만큼 낭비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삶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글쓰기 영역에도 피해가 갑니다. 이른바 ‘워라밸 붕괴 현상’이지요. 그가 글을 몰아쳐서 썼다면, 분명 번아웃을 겪었을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새벽에 일어나 오전 동안 글쓰기에 집중하고, 오후 이후부터는 운동이나 독서 등 삶의 다른 영역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하루키의 하루도 헤밍웨이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문학의 신을 접한 날에는 온종일 글만 쓰다가,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아예 원고지를 팽개치고 다른 일에 열중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지속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저는 규칙적인 습관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저는 비교적 일정이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강의시간 이외에는 딱히 구속받을 일이 없었지요. 이 때문에, 저는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에 열중하느라 다른 여러 일들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만들었습니다. 제게는 가정, 강의, 학자로서의 과제, 사회생활, 취미, 기타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강의 준비에 몰두하다 보면 가정 일에 소홀해졌고, 허겁지겁 가정 일을 챙기다 보면 논문이나 책을 쓰지 못했고, 학자로서의 임무를 다하려다 보면 사교생활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번아웃 증후군에 빠졌고, 만성피로에 허덕였습니다.  

이는 결코 제 변명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보다 훨씬 바쁘게 살며, 맡은 일도 많습니다. 저는 제대로 된 습관을 갖추는 법을 알지 못했기에, 항상 허둥지둥 살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한 셈입니다.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저는 철학 전공서적을 잠시 밀쳐두고, 습관에 대해 쓴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션 영의 <무조건 달라진다>(21세기 북스, 2018)와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 :기적 같은 변화를 불러오는 작은 습관의 힘>(비즈니스북스, 2014)은 제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책은 미국 전역을 습관 열풍으로 강타했던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비즈니스북스, 2019)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임스 클리어의 책을 리뷰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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