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바다는 더없이 잔잔했고, 하늘은 흠결 하나 없는 사파이어 빛으로 온 세상에 축복을 내리는 성인의 얼굴을 하고는 자비로운 것처럼 굴었다. 간밤의 뒤척임이 남긴 눅눅한 불안은 이 완벽한 평온 앞에서 되레 더 이질적인 얼룩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클로드의 공허한 눈빛과 어깨를 툭 치던 힘없는 손길이 그녀는 내내 찜찜했다. ‘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그가 남긴 마음의 앙금이 밤새 그녀의 꿈속을 서성였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밤이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다이빙 센터에 도착했다. 불안을 잠재우는 그녀만의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실행. 무언가를 하는 것. 그리고 몰두하는 것. 그녀는 클로드가 보는 앞에서 강사들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그 가르치기 까다롭다는 레스큐 코스를 완벽하게 치러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성장을, 이 섬에 온전히 뿌리내린 자신의 단단함을 증명해 보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의 비장함이 차라리 불안하고 불길한, 명치 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비릿한 느낌을 밀어낼 거라 믿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이버로 만든, 이제는 그녀처럼 프로페셔널 다이버가 되기 위해 돌아온 두 명의 한국인 학생이 센터에 나타났다. “강사님! 오랜만이에요! 얼굴이 더 까매졌네요!” 그녀도 활짝 웃으며 한 명씩 다가가 껴안고는 “다들 창백한 서울 같은 얼굴이 다 됐네!” 하고 화답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마치 클로드처럼 희미한 냉소와 블랙 유머를 담은 문장을 쓰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멈칫하고 혼자서만 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쪽 입술을 삐죽거렸다.
두 학생과 자리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그녀는 앞으로 코스 진행 일정이 어떻게 될지 자세히 설명했다. “아,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우리의 ‘레전드’ 클로드가 여러분의 레스큐 코스를 맡아 줄 거예요. 저 역시 코스 내내 함께 할 테지만, 여러분은 클로드에게 배우는 걸 행운이라 여겨야 해요.”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밝게 웃었고, 학생들 역시 “오! 너무 좋아요!”라며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그래, 모든 게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어젯밤의 그녀가 유난히 예민했을 뿐이다.
약속된 시간, 아침 8시. 클로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가벼운 짜증이 일었다. 8시 5분. 또 새벽까지 첼시 경기를 보며 밤새 술을 마신 걸까. “늦게까지 맥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어젯밤 클로드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던 자신의 말을 떠올렸다. 8시 10분. 케빈과 다른 강사들에게 물어도 오늘 아침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센터의 공기가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조금씩 다른 온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젯밤 그녀의 심장을 둘러싼 이상한 느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불안이 다시 밀려들어와 스멀스멀 발목을 적셔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클로드가 코스 교육 시간에 늦은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케빈! 이 친구들, 장비 사이즈 체크 좀 먼저 하고 있어 줄래? 내가 클로드 집에 한 번 가볼게.” 학생들에게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녀는 다이빙 센터 뒷문을 통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는 집까지는 센터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그녀는 그를 만나면 내뱉을 퉁명스러운 잔소리를 미리 혼잣말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당신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학생들이 기다리는데 수업에 늦다니, 프로답지 못하게!’ 그의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그려져 그녀는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불길한 예감이, 그저 서울에서 묻혀 온 예민함 탓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클로드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맞이한 건 12살을 넘긴 노견 ‘재미’였다. 재미는 어렸을 때부터 클로드의 여자친구가 키우던 개였는데 둘이 헤어질 때 클로드를 따라 나왔다고 했다. 까만 털에 까만 눈동자, 까만 코를 한 작은 개였지만, 이 섬에선 그녀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터주대감이었다. 그녀를 알아본 재미는 특유의 느릿한 몸짓으로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얼굴을 비벼댔다. 재미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환대에 그녀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무 일도 없네.
방갈로 마당 한가운데 평상 위에는 이제 막 빨래방에서 찾아온 듯 깨끗하게 개어진 옷가지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셔츠와 반바지, 그가 즐겨 입던 낡은 첼시 유니폼까지. ‘젠장, 클로드.’ 그녀는 또다시 자신이 너무 예민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정황은 그가 이미 일상을 시작했음을, 조금 늦잠을 잤거나 센터로 오는 길에 어디 들러 커피나 아침거리를 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의 자신이 서운함과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받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그의 상태를 오독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헤이, 재미! 네 주인 아저씨 어딨어?” 그녀는 재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손끝에 걸리는 진드기 몇 마리를 잡았다. 진드기 퇴치제나 약이 있을 리 만무할 작고 외딴 섬에 사는 개는 언제나 피부에 달라붙어 하도 피를 빨아 통통하게 부어오른 진드기들이 몇 마리씩 붙어 있었고, 그녀는 언제나 그것을 떼어줬다. 한두 마리 떼어내다 보면 그녀는 그 행위 자체에 빠져들었고, 재미는 배를 보이고 드러누워 그녀의 손에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을 보낸 추억도 그들에겐 있었다. 한참을 클로드 집 마당 한가운데 주저앉아 재미의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주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센터로 향했다. 자꾸 그녀를 따라 나서는 재미를 대문 안으로 밀어넣으며 그녀는 말했다.
“클로드가 널 데리고 올 거야. 이따 봐.”
센터로 돌아온 그녀는 학생들과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클로드가 아마 새벽 첼시 경기 때문에 밤을 샌 모양이에요. 영국인들, 알잖아요? 축구에 목숨을 건다니까. 일단 제가 먼저 브리핑을 시작할게요. 오늘 레스큐 코스는….” 그녀는 교재를 펼쳤다. 하지만 글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장들이 그녀의 시선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마음 한구석이, 마치 물속에서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삐걱거렸다.
깨끗하게 개어져 있던 옷가지들. 그 완벽한 정리 정돈이, 오히려 클로드답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단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빨래가 마르면 다이빙 센터에 통째로 가져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펼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때 하나씩 구겨진 채로 갈아 입던 사람이었다. 어젯밤의 그 공허한 눈빛이, 그 기이한 거리감이, 단정하게 개어진 첼시 유니폼 위로 겹쳐지며 그녀의 심장을 내리쳤다.
‘안 돼. 가봐야 해.’
“여러분, 잠깐만요. 아, 정말 뭔가 이상해서. 저 다시 한번만 클로드 집에 가볼게요. 금방 올게요!”
학생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한 채, 그녀는 다시 다이빙 센터 뒷문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걷다 이내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중지 손가락과 손바닥이 맞닿는 부분에 돋아난 굳은살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클로드의 집은 아까와 똑같았다. 재미가 다시 꼬리를 흔들며 그녀를 맞았다. 빨랫감도 그대로였다. 이번에 그녀는 평소보다 데시벨을 한껏 높여 고함을 쳤다.
“클로드! 젠장, 진짜 늦었어! 다들 기다린다고!” 그녀는 클로드의 집안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집안은 고요했다. 그녀는 클로드가 분명 집안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집안은 모든 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손님을 맞기 전 집안 곳곳을 청소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곳저곳 눈을 옮기며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평소라면 담뱃재가 수북이 쌓여있었을 재떨이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어젯밤 그가 마셨을 찻잔도 깨끗이 설거지되어 건조대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침실의 침대 시트는 호텔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부엌도, 침실도, 거실도, 마당도, 단정했다.
그것은 클로드의 일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침표였다.
그녀는 색색 새어 나오는 숨을 고르며 ‘대체 어디 간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집을 나서려 했다. 바로 그 순간. 거실 창문을 통해 그녀의 시선이 집 뒤편, 덤불 너머까지 뻗어 나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창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그녀의 뇌가 눈앞의 광경을 인식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은 그저, 오늘따라 유난히 밝고 자비로운 태양의 그림자이거나, 그런 태양이 두려워 숨은 어둠의 일부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눈은 무언가를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림자는, 그녀가 지금 찾고 있는 사람, 클로드의 실루엣이었다. 그의 축 처진 몸이, 그녀의 세계를 향해 마지막으로 돌아선 채, 미동도 없이 그곳에 매달려 있었다.
“......”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폐에서 이미 모든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렸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이성보다 먼저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집 밖으로 뛰쳐나온 그녀는 다이빙 센터로 향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재미를 지나쳐, 신발을 찾아 신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5분 남짓한 거리. 반짝이는 햇빛과 어우러진 야자수가 춤추는 그 길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몇 번이고 다리가 풀려 길 위로 넘어졌다. 뾰족한 돌조각과 모래가 무릎에 박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하얗게 바랜 바탕에 오직 그 검은 실루엣만으로 채워졌다.
마침내, 다이빙 센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교육생들과 케빈, 모두가 땀과 눈물, 흙먼지로 범벅이 된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달려들었다.
“하나!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다쳤어?”
케빈이 그녀의 팔을 붙잡는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억눌려 있던 공포와 현실감이, 그녀의 폐부를 찢고 터져 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절규가 터져 나왔다.
“얼른!!! 지금… 당장… 구급차 불러! 클로드가… 클로드가….”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녀를 이 섬에 붙잡아 주었던 가장 무거운 닻이, 소리 없이 끊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