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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26. 2022

당신은 아빠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나요?

우리의 인생에 커피가 없다면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 체질이라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하루도 커피를 마시지 않고 살아본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나는  그대로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30 한창 일할  커피를 하루에 10 정도는 마셨다. 그렇게 마셔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니어서 아침저녁   없이 커피를 수시로 찾아마셨고 즐겼다. 커피중독. 그런데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고 드디어 몸에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한의원 선생님 말을 빌리자면 이랬다.     

    위가 멈췄어요.

    대체 커피를 얼마나 마신 겁니까?”


모든 일이 그렇듯 발병의 순간이 오면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만다. 임계점에 이르기 전날까지도 커피를 수도 없이 마셔대던 나는 그날 이후로 커피를 단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아니,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커피는커녕 밥을 먹기도 힘들어졌다. 그러자 난생처음으로 몸무게가 줄어드는 희한한 경험마저 했다. 한 달 만에 무려 10킬로그램이 빠지면서 몰라보게 핼쑥해진 나는 그 좋아하던 커피를 단박에 끊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두 달 동안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약을 지어 먹어야 했으며 기력이 쇠해져 일상생활도 벅차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밥맛을 잃어 본 적이 없던 나였으니 처음 맞이한 그 상황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소원했건만 막상 아파보니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저 원하는 것이라고는 밥을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몸이 나에게 말했다.


‘몰랐니? 넌 더 이상 넌 30대가 아니야’


아마도 몸이 내게 경고를 날리고 싶었던 것 같다. 당장 커피를 줄였고(아니 끊었고) 요가를 시작했으며 밥을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였다. 다행히 3개월 만에 몸은 천천히 회복되었다. 전처럼 밥맛이 살아났고 몸무게 또한 빠진 10킬로그램에 정확히 2킬로그램을 더해 예전의 풍성한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연히 커피도 다시 마시게 되었다. 다만 전처럼 10잔씩은 마시지 않고 하루에 두세 잔 정도만 마신다. 나는 이렇게나 극과 극을 오가는 사람이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몸을 관리하면서 사람들과도 적당히 관계를 맺는 것은 애당초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몸이 상할지라도 끝까지 파고든다. 누굴 닮았나 했더니 딱 아빠 모습이다. 그는 극과 극을 오가는 성격파의 원조니까.


커피 또한 그러했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른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면서 커피만은 한 컵씩 가득 따라 마시곤 했다. 암 환자에게 커피를 드리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고집은 막을 수 없었다. 아빠가 그토록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무심하게도 발병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자식은 그런 존재들이다.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평가하고 정의 내린다. 애당초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마음도 없었고, 끝내 자기가 최고인줄 알고 지내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발등을 찍는 심정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이야기다.       




2018년 봄, 아빠를 인터뷰하기로 하고 함께 카페에 갔다. 마주 앉은 그 시간이 처음엔 어찌나 불편하고 어색하던지 주문한 음료가 빨리 나와 주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잠시 후 우리 앞에 놓인 검고 따뜻한 커피 두 잔. 아빠는 커다란 머그컵에 담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후 두 어 번 불고 나서 음미하듯 커피를 마셨다. 처음엔 커피 향을 즐겼고 그 다음엔 커피 맛을 즐겼으며 마지막으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게 그렇게 폼이 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아, 아빠가 커피를 좋아하시는구나!’

  ‘우리 아빠가 참 폼 나는 사람이구나!’     


봄이 한창인 5월에서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7월 초까지 아빠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카페에서 만나 두어 시간 동안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 때문인지 커피 때문인지 집에서는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술술 잘도 이어졌다. 아빠는 커피를 마시고 잔이 비워지는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하나둘씩 털어놓았고, 나는 그것을 녹음했다. 처음으로 아빠를 가족의 일원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시간이었다. 물론 커피를 함께 마신다고 해서 누구나 자식에게 자신의 과거를 다 털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좀 의외였다.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과거는 또 그런대로 숨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참으로 용기 있고 순수한 사람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 봔도 어쩐지 그건 자신이 없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우리는 호수공원 근처의 한 카페에 갔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는 아빠가 답답해 보였고 카페라는 공간에 가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빠는 뜨거운 커피를 대형 사이즈로 주문했다. 조금이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티라미수 케이크와 파이 등도 주문했지만 아빠는 그런 것들은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대신 커피는 두 번이나 가득 따라서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커피가 투병 중인 아빠의 몸에 도움이 될 리는 없겠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커피를 몇 잔 덜 마신다고 아빠가 백만 년을 더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한 잔을 더 마신다고 당장 잘못된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빠는 지금 커피 한 잔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커피라도 잘 드시는 아빠의 모습이 말도 못하게 좋았다.      


  - 아빠 여기 커피 괜찮아요?

  - 응, 아주 맛있다.    

  

커피 한잔을 다 비웠을 때 잠시나마 아빠의 까만 눈이 반짝 빛났다. 그날 카페를 나와 우리는 조금 걸었고, 숨을 돌리기 위해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더 이상 카페에 갈 수 없었다.      

   

투병 중에도 아빠는 좋고 싫은 것이 명확했다. 몸에 좋은 거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대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빠의 고집에 솔직히 좀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아빠의 자존심이었다. 아빠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어떤 포즈가 있었던 것 같다. 밥은 먹지 않아도 커피 정도는 마셔주어야 하는 것, 끝내 포즈 잡는 것을 놓지 않았던 아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빠에게는 폼이 전부였으니까.

인생이 뜻대로 안 풀려도 아빠의 포즈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마도 커피가 아니었을까?


검고 뜨거우며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은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불안한 아빠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빠처럼 나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되면 검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찾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아빠 딸이니까.


그날 카페에서 생에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미소 짓던 아빠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생은 지루해도 커피는 맛있다



딸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http://naver.me/5YiuzOhl



김경희 저 / 공명(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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