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호신술로 나를 구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나에게 다가온 우울과 함께 살면서 사람을 피하는 증상이 잠시 있었으나 나는 본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깨닫은 것도 우울증과 싸우고 서서히 회복되면서였다.
여러 운동을 하나씩 배우면서 다정하게 가르쳐주는 코치님들에게 마음을 기대어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재수강을 하곤 했다. 다행히 마음이 어려운 상태인데 호통이나 채근을 하는 코치는 우연이라도 피해갔으니, 어떻게 보면 코치 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조금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려보면, 수영을 가르쳐주던 H코치님은 무료 수강을 제안했다.
“요즘 왜 안와요?”
“백수라 돈 떨어졌어요 히힛”
가볍게 답하는 내 말에 코치님은 진지하게 답했다.
“그럼 그냥 와요”
“그냥 오라구요?”
“네. 그냥 가르쳐줄게요. 잘 되면 갚으세요.”
“왜요?”
“물 속에서 그렇게 좋아하는데 돈 때문에 좋아하는 거 못 하면 슬프잖아요.”
H코치님은 실제로도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등의 말을 가끔 하는 등 돈을 떠나 코칭에 진심인 편이었다. 황송함에 실제로 무료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코치님이 그런 제안을 할 정도로 나를 진심으로 가르쳐 준 것은 큰 위로가 됐다.
크라브마가는 5개월이 넘어가면서 실력이 더 이상 늘지 않았던 복병이 있었다. 크라브마가는 화이트벨트(흰 띠)에서 옐로벨트(노란 띠)까지 가는 데 일년에서 이년이 걸리며, 그 사이 화이트 벨트에 스트라이프(하얀 줄)를 묶는 것으로 레벨을 표시한다.
나는 겨우 흰띠에 1스트라이프만 달고 있는 상태였는데 2스트라이프로 가려면 가드 올리기와 펀치 등 기본 자세부터 제대로 익혀야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석연치 않자 나도 답답하고 코치님도 답답한 상태였던 것 같다. 어느날부터 자꾸 파트너가 특별해졌다.
“둘씩 파트너 정하세요. 차나는 여기랑 하고”
돌아보면 씩 웃고 있는 사범님이 있었다. 사범님은 돌아다니면서 동작 코칭을 해주느라 바쁜 사람인데 내 전담마크를 시키고, 대신 회원들은 코치님들이 직접 돌아보았다. 그래도 될까 싶었지만 한 동작 한 동작 따라하기 버거운 나에게는 사범님 1대1 코칭이 너무 간절했다.
“차나씨 실력이 이렇게 느는 사람은 없어요”
사범님은 가파르게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그렸다.
“우리 같은 보통인 사람은 이렇게 가죠.”
종종 자신이 나만할 때 얼마나 못 했는지를 설명하며 진심어리게 격려해줬던 사범님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렸다. 그러면서 “재능이 있다면 가파르게 갈 수도 있지만 그 사람도 결국 노력하지 않으면 정체돼요”라고 덧붙였다.
사범님은 내가 몇번이고 틀려도 될 때까지 미트를 잡아주었다. 짜증나는 내색 하나 없이 끝까지 웃으며 “다시”를 외치는 사범님을 앞에 두고, 나 역시 입술을 꽉 깨물고 집중했다. 이렇게 늘어난 집중력은 동작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