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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끝나지 않는 사랑

명화 속 '사랑' 이야기 9

by 오운다
Courtesy of Rijksmuseum, Public Domain

그림 소개

작가: Odilon Redon

작품명: Ophelia with a Blue Wimple in the Water (1900-1905)


그림 속 사랑

물 위에 떠 있는 형체.

몸인지, 꽃인지, 기억인지 모를 형체는

경계가 흐릿하다.

주변의 색채가 스며들어 형체의 일부가 되고,

색채가 주변으로 번져나간다.

하나의 존재가 다른 것들과 섞이는 순간.

오딜롱 르동의 그림은 그렇게

이별 후에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을 보여준다.

물에 잠긴 형체처럼,

의식의 표면 아래 가라앉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처럼.


사랑의 방향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사랑은 부재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별 후 남겨진 것은

기억이 되어 우리 안에 스며든다.

이 그림처럼,

분명한 형태가 아닌 색채와 인상으로.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변한다.

사랑했던 그 사람은 사라졌지만,

사랑했던 나 역시 이전의 내가 아니다.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 듯,

그 사람과의 시간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웃음소리, 손끝의 온기, 함께한 풍경들.

그것들은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별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당신의 사랑

이별 후에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순간들.

익숙한 노래가 들릴 때,

특별했던 장소를 지날 때,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음식을 볼 때.

그때마다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그림 속 형체처럼,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별 후의,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기억은 이상하다.

아픔은 희미해지고,

남은 것은 색채와 질감뿐이다.

분노도, 후회도, 그리움조차도 색이 바래고,

남는 것은 그저

내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물 위에 떠 있는 형체처럼,

우리 안의 사랑도 형태를 바꾸며 떠 있다.

때로는 가라앉고, 때로는 떠오르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제 내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숨 쉬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의 일부.

그래서 진정한 이별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사랑한 후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니까.

그 변화 속에서 사랑은 계속된다.

다른 형태로, 다른 색채로, 다른 깊이로.


사랑 키워드

#기억 #추억 #빛바랜 #흔적 #존재의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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