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잔 Nov 23. 2023

홀가분한 기분

슈베르트의 송어


추수 감사 주일 한 주 전, 세일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 주제는 '헌금'이었다. 한 주 뒤에 있을 추수감사절과 돌아오는 연말에 있을 기부금 행사를 위한 것이 아닌지 눈치 빠른 장로들은 벌써 눈빛을 교환한다.


축도로 예배가 끝나는가 싶더니 "아, 잠시만요. 미처 나가지 못한 광고가 있습니다. 화면을 보여주세요." 조한일 목사는 축도를 잠깐 미루고 광고를 내보냈다. 화면에는 부고장이 띄워졌다. 이름과 장소뿐인, 급히 만들어진 부고장이었다. 조한일 목사가 덧붙여 설명하기를 어제, 토요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심순자 권사가 소천했다는 내용이었다. 조한일 목사의 광고가 끝나자 응? 뭐여? 심순자? 뭐여어? 그 심순자? 현심은 뒤를 돌아보며 비슷한 연배의 방울 무늬 스카프를 두른 한 부서 소속인 금덕에게 속닥였다. 여전히 조한일 목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축도하기 전 찬송가를 부르기로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반주가 시작되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시작되자, 현심의 눈에서 조절할 수 없는 눈물이 새어 나왔다. 현심은 놀라, 집게손가락으로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냈다. 몇몇 자리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요일 교회에 온 성실한 성도는 헌금은 준비했어도, 갑작스러운 교우의 부고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현심과 금덕은 예배당을 빠져나가지 않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함께 의자에 앉아 당황스러운 심순자의 소식에 글썽글썽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수요일에 봤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어떻게 된 거야." 현심이 말했다. 금덕은 어떻게 알았는지 잠든 밤 심순자가 조용히 불려 간 일에 대해 현심에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소리도 없이. 심순자는 불려 갔다.


훌쩍거리던 코가 진정이 된 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현심이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금덕을 보고 말했다. "그니가 사람 요상하게 웃길 줄 아는 사람이었어. 봄 돼서 심방 갔었잖어. 순자네 집에." 현심은 순자를 떠올렸다. "봄 심방 때 심순자네가 첫 번째였잖아. 예배 다 드리고 차 마시는데, 세탁기에서 띵띵 소리 나는 거 있잖아, 끝나는 소리. 빨래 다했다고 알려주는 거. 그걸 듣고는 심순자가 자기는 항상 그게 궁금했다는 거여. 그 소리가 뭔 노래인지. 그래서 며칠 전에 딸한테 물어서 알아낸 것이, 뭔 슈베르트 어쩌고 하는 사람 노래라는 거여. 아 그래서 그 자리에, 우리 다, 목사님까지 앉혀놓고 핸드폰으로 그 노래를 틀어놓고는 좋지 않냐고, 그걸 끝까지 틀어놓고는…. 참." 현심이 눈에 맺혀오는 눈물을 삼키려고 눈알을 위로 굴렸다. 끔뻑대는 현심의 눈을 보고 금덕도 코끝이 빨개졌다. "하여간에 심순자 때문에 그날 웃겼어, 좌우지간."


심순자가 불려 간 곳은 평생 심순자가 꿈꾸었던 어떤 걱정도 없고 슬픔도 없는 곳이었다. 심순자의 몸은 더 이상 어깨결림도 느껴지지 않았고 허리가 욱신거리는 고통도 없었다. 새털같이 가벼운 느낌 이상의 만족으로, 중력의 영향 따위는 기억에서 잊혔다. 심순자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기억이 살아있었다. 다른 게 있었다면,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중력이 작용하는 땅 위에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모두 이해가 될 만큼 심순자는 진정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심순자를 더욱 놀라게 한 특별한 경험은 호르몬의 변화였다. 남편과 자식 걱정에 결혼 후 한 번도 심란한 마음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순자였지만, 혈혈단신 불려 온 순자가 만 리 이상으로 가족과 떨어졌음에도 걱정이나 불안을 떠올리지 않았다. 순자는 홀가분했다. 여름 강물에서 뛰어노는 송어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