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잔 Jul 19. 2024

정신의 바다

이 긴 정신의 바다를 건너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중케이에르는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바라보는 것을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혹시 시의 본질에 대한 싸움이 언제 끝났는지 아시나요?

삶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끝났나요?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혹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혀졌나요?

f-201호 강의실에 불쑥 나타난 방문자로부터 이제 막 강의를 끝낸 중케이에르 교수가 세 가지 질문을 받았다. 중케이에르는 청년 시절의 매력이 눈가에 남은 50대 후반의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전혀 당황하지 않은 눈으로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지체한 후 당황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방문자를 알아보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놀라움에 겨워 이어 말했다. <블랙홀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공간 반응 역학> 74페이지로 빨려 들어간 최초의 사람이군요! 이봐요. 사건의 지평선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어떻게 살아있죠?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죠? 중케이에르 교수는 방문자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방문자 역시 중케이에르와 마찬가지로 당황한 기색이 없이 대답했다. 초월적인 현상을 믿나요? 나는 그걸 경험했을 뿐이에요.


방문자와 중케이에르는 따뜻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은 추웠다. 15분 동안 방문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중케이에르는 사랑의 오류에 빠졌다. 낯선 방문자의 깜짝 방문이 불러온 오류였다. 중케이에르는 정신과 육체, 그 밖에 사소한 것들까지 지나치게 방문자와 나누었다. 중케이에르가 집필 중이던 원고의 1.5/3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중케이에르는 마지막 숨도 아끼지 않고 방문자와 나누었다. 방문자는 중케이에르의 장례를 마치고 집필 중이던 원고의 1.5/3를 처리해야 했다. 본문과 자료, 주석을 분석하고 나머지 미완성 된 1.5/3를 처리하는 일 또한 결정해야 했다. 가제는 이렇게 정해져 있었다.

사건의 지평선 연구와 사랑의 오류 분석.

방문자는 중케이에르의 유고였던 <가제: 사건의 지평선 연구와 사랑의 오류 분석>을 완성했다. 방문자는 이러한 서문을 남기고 <가제: 사건의 지평선 연구와 사랑의 오류 분석>의 정식 출판 제목 <f-201호>의 첫 페이지로 빨려 들어갔다.

-삶과 사랑과 시의 본질을 찾아 기나 긴 정신의 바다를 건넌 중케이에르께 찬사를 보냅니다-         

이전 10화 작은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