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Jun 07. 2023

리셋 버튼을 찾아서

서울을 떠나온 이유

내 사주에는 3개의 살이 있다고 한다. 역마살, 현침살,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도화살까지. 이 3개의 살 중에서 내가 가장 절감하고야 마는 살은 단연 역마살이다. 나는 자주 떠났고, 그리고 언제나 떠날 궁리를 하곤 했다.


역마살이 그저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20대의 나는 자주 짐을 쌌다.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무렵부터 집을 떠났다. 시간과 돈이 허락할 때마다 나라 안팎을 떠돌았다. 호주에서 10개월-두어달 간격으로 거주지를 계속 옮겼다 -을 살았고, 캄보디아에서 반년을 지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주말이면 짐을 쌌다.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회사는 부모님의 집과 점점 멀어졌다. 집에서 먼 회사에 다니는 것도 역마살이라던데,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의 직장을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회사에 붙들려있어야 해서, 회사 근처에 자취집을 마련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일에 쏟는 시간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취 생활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그냥 운명이려거니 여기면서.


그렇게 집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려는 노력들- 국내외 여행, 그리고 바다를 건너 거주지를 마주하려는 두 차례의 노력 끝에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지방에 내려와 1년을 넘게 보내고야 알았다. 역마살이 아니라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이전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곳에서 말이다.



20대 초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내 꿈은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것이 오명이나 악명일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을 줄 알았다. 나만, 나 하나만 나쁜 사람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것이 아주 추악한 생각이라는 걸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 교과서에 이름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소수라는 걸, 나는 그렇게 되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주목을 받기에는 너무 겁쟁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렸다. 그리고 아프게 배웠다.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는 사람은, 그 사람의 행위가 무엇이건 간에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실린다는 건,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어린 날의 자의식 과잉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자의식 과잉인 나의 과거와 함께, 서울 곳곳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덧붙여졌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한때 깊이 사랑했던 나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 지하철역에서, 도심 한복판에서, 심지어 집 앞에서도 그때의 사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인연들과 그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주저앉았다. 보고 싶어서, 배신감에 베인 상처가 끝까지 아물지 않아서 계속 울었다. 그리고는 며칠을, 길게는 몇 달을 앓았다.



새로운 시작.


나에게 탈서울은, 그러니까 다시 살아내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어떻게 살아가든,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것 없어지든, 나는 서울을 벗어난 다음에야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