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보다 괴로움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
의심이 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처음엔 왜 저렇게 삐딱하게 굴지?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의심부터 하는 경향은 그 친구가 좀처럼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그러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가정폭력과 방임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가족에게는 버림받다시피 했고,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를 가까이서 목격했으며, 이런 환경 탓에 학교에서도 소외되었습니다.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의심이 많은’ 경향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생존전략이었다는 것을요. 믿었던 가족과 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고,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었고 믿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언제 또 나를 배신해서 고통스럽게 할지 모르니까요. 어린 시절에 온전히 안전감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라는 믿음이 강하게 형성됩니다. 그 결과 세상을 경험할 때에 지나치게 신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마음을 주었다가 또 상처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기인한 자기 방어 전략인 거죠. 생존하기 위해서 ‘의심’은 필수였던 겁니다. 자라면서 점차 성격의 일부가 되었고요.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사회생활도 하고 연애도 합니다. 하지만 성격의 일부가 되어버린 의심하는 경향은 일상에서 걸림돌이 됩니다. 남자 친구와 잦은 싸움의 원인이 되었고, 직장에서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작은 단서에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 라거나 타인의 친절 앞에서도 ‘다른 속셈이 있어서 잘해주는 척한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니 관계가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늘 불안해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다양한 갈등을 이해해 보려 하면 결국 그 밑에는 세상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의도를 왜곡해서 이해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켰던 기능 (=의심하는 태도) 이 현재의 나를 괴롭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과거에는 나를 살게 했지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마음의 안정에는 그렇지 못한 거죠. 오히려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평온해지지 못하는 친구가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제 친구만의 이야기일까요? 모양만 다를 뿐 평온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건 현대인들의 공통된 문제가 아니던가요.
우리가 공유한 마음의 문제는 친구의 경우처럼 생존에는 도움을 주지만, 마음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먼 옛날, 원시시대에는 이롭게 작용했지만 현시대에는 마음을 더 피폐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이해하려면 '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괴로움은 생각에서 비롯되니까요.
뇌는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성공적이죠. (어쨌거나 우리가 존재하니까.)
자연선택*이론은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세 가지 특성을 살펴볼게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 주의 산만함, 불안감, 부정적인 경향성'입니다.
1. 주의 산만
인간은 유일하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짐승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현재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에 ‘나 혼자 산다’를 틀어놓고서도 생각과 걱정에 빠지곤 하지요. 눈앞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슬픈 존재입니다.
한곳에 오롯이 집중하는 ‘몰입(Flow)’상태는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몰입하기가 어렵고 주의가 산만해질까요. 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수십 번도 더 열어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원시인의 삶으로 가봅시다. 어떤 환경적 자극에도 주의를 뺏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면, 불을 피우는 데 열중하느라 포식자의 침입을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짐승이 가까이 다가와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잡아먹히기 딱 좋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거고요.
즉 항상 주변을 살펴서 위험으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었겠지요. 현대의 우리에게 휴대폰 중독을 안겨주었긴 하지만요.
결론 : 생존하기 위해서 주의 산만해야 합니다.
2. 불안(두려움)
눈치채셨겠지만 우리 뇌 속에는 아직 원시인이 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늘 위험을 경계하고 있지요.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불안이 탄생합니다. 불안은 위험을 알리는 가장 좋은 시그널이거든요.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단서가 발견되는 즉시 불안감을 느끼며 몸은 긴장을 하죠. 싸우거나 도망가기에 적절한 신체 상태가 됩니다. 원시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셈입니다.
자극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경보장치 울림(불안감)
-> 소리가 나는 곳을 살핀 뒤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한다.
-> 성공(생존)
이 경보장치(=불안)는 현시대에 와서 온갖 일들에 민감하게 울려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만... 어쨌거나
결론 : 두려움은 내 목숨을 지켜주는 감정입니다.
3. 부정적인 경향성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면 기쁨과 행복감을 더 자주 느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태생이 부정적인 것에 주의를 더 많이 기울입니다.
부부싸움이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좋은 점 10가지는 쉽게 망각하고, 부정적인 한 가지 측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부딪히게 되죠.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더 크고 강하게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입니다.
1,2번(주의산만과 불안) 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결국 나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협 정보를 민감하게 알아차려 나를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긍정적인 사건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재롱보다 적의 위협을 빨리 알아차려야 가족을 살릴 수 있잖아요.
이것이 이어져 현대에 와서는 성공에 대한 기쁨보다 실패에 대한 좌절감을 훨씬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또, 배우자가 저지른 실수 하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네요(Gottman 1995**). 단 한 번의 실수로 아내분이 화가 났는데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고요? 아직 멀었습니다. 다섯 배는 더 노력하십시오.
신경심리학자 릭 핸슨은 ‘살아남아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개체들은 그 대가로 부정적 경험에 대한 엄청난 주의를 유전자에 심어놓았다. ‘고 말합니다.
결론 : 부정적인 정보를 훨씬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은 살아남은 유전자의 흔적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이 세 가지 모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고, 게임이나 휴대폰에 주의를 빼앗기고, 부정적인 일들에만 초점을 맞춰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듭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방향이 인간의 행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은 ‘생존’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명을 사수하기 위한 행동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계속 불안해할 겁니다. 그건 따로 공부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온한 마음’ 즉, 행복감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건 몸에 새겨져 있지는 않거든요.
별수 있나요. 몸에 새기기 위해서는 연습밖에 답이 없지요. 고요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뇌를 길들이는 것입니다.
*자연선택 : 유전자 전파에 유리한 신체적, 정신적 특징은 유지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사라진다는 이론. 자연선택의 목적은 생명 개체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Gottman, J. 1995. Why Marriages Succeed or Fail: And How You Can Make Yours Last. New York: Simon and Schuster.
위 글이 담긴 브런치북 [How are you?내마음] 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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