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이야기에 자신을 밀어 넣지 말 것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살다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꼭 나에게만 어려운 일이 쏟아지는 것 같을 때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도대체.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아무개가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나야?라고.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권선징악이 통하는 동화라면 내게 복이 올 때도 됐는데 복은커녕 야속한 일들만 자꾸 생기는지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에게는 상황을 명확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인을 밝혀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런 시련이 나에게 왜 일어나는지, 도대체 나라는 인간이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찾습니다.
그 상황에서의 불편한 감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호한 상태는 불안을 유발합니다. 상황이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렇기에 인과관계를 찾으려 하고 정답과 결과를 얼른 알고 싶어 합니다. 돈을 내고서라도 사주나 타로카드를 보는 인간의 심리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무엇이든 '알아야'마음이 놓이니까요.
이렇게 뭐든 확실히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각자 나름대로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인과관계를 완성합니다. 또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험들을 정돈합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일들이 이 작업을 통해 가치 있게 되고 덕분에 살만해지죠.
예를 들어. 반복되는 집안일에 지겨워할 법도 한 주부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따뜻한 밥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공간을 단정하게 가꾸는 이야기를 통해 청소나 밥 차리기가 기꺼이 할만해집니다. 퇴사 욕구가 차오르는 직장인이 나중에 큰 꿈을 위해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버티는 힘이 되고요. 또 직장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이 직장에 오게 된 것이라고 러브스토리를 완성하겠죠. 비록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회사에 다닐 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경험하는 일들의 ‘좋음’과 ‘나쁨’에 대해서 이야기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사람마다 다양한 결론에 이르겠지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판단과 평가를 하는 겁니다. 마음 챙김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판단하지 않을수록,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수록' 마음이 안전해질 수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더욱이 판단이 자신에게 해로운 쪽으로 일어날 때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랫동안 근무해온 직장에서 회의감이 들 때 '나는 이 일이 맞지 않아. 재미도 없고 적성도 안 맞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대학 전공을 선택한 것부터 다 잘못됐어.'라고 생각한다던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도통 되는 일이 없다며 인생 전체를 실패로 해석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가져야 하고 성취를 해내야만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삶은 끔찍한 삶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 안에서 '나'라는 주인공은 비참하고 불행합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지어낸 그 스토리텔링 속에서만 폐인이고 형편없는 사람인 거죠. 이야기 안에서만 나는 불행한 겁니다. 현실에서의 나, 실재하는 나는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나예요 그냥. 나.
지어낸 이야기를 걷어낼 수 있을 때에, 즉, ‘아 내게 일어난 일들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에 내가 훼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자각할 때 지나친 자기비하로부터 구해낼 수 있습니다. 가공된 이야기 속의 나는 언제든지 실패자가 되고 끔찍한 상황에 처해질 테니까요.
오히려 이야기를 짓는 재능을 나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쪽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요. 그건 가짜가 아니라 ‘힘’이 될 거고요. 그 힘이 바로 이야기를 토대로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죠. 의미가 있을 때 내가 하는 어떤 행위도 가치 있어지고, 그럼으로써 마음도 더 단단해질 테니까요.
세상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좋음도 나쁨도 아닌 중립의 세상입니다. 때문에 권선징악이 통하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로 완성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세상은 동화가 될 수도 영화가 될 수도 있어요. 재밌는 시트콤이나 감동적인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즐거운 인생도 되고 괴로운 인생도 되는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의 재능을 즐겁게 이용하되,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호한 세상에서 겁내지 않고 또렷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테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의 세상이지만, 세상은 그 자체로 좋음도 나쁨도 아니라는 것. 다만 우리가 보는 시각에 따라 색이 입혀져 왔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라도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나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위 글이 담긴 브런치북 [How are you?내마음] 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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