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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Jan 15. 2024

도서관에서 배운 도서관예절

24년 1월 1일 빨간 월요일

내가 주로 방문하는 ㅎ도서관은 휴관일이 금요일이다. 이 사실을 알고 감격했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보통 도서관의 휴관일은 월요일로 이전까지 월요일에 책을 빌렸던 기억이 없다. ㅎ도서관은 종합자료실과 어린이 자료실이 전부인 작은 도서관이지만, 아담한 건물 1층 안으로 해가 들고 바람을 쐴 수 있는 야외 벤치가 있어 차분하게 머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도서관 위로 공원이 이어져 있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공원으로 나들이 가기 좋다. 


이곳을 가면 [월요일도서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출근이 없는 자유인이지만)에 도서관으로 발걸음 한다는 사실이 설렜다. 이 기분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올해는 월요일에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24년 1월 1일이 월요일인 바람에 시작도 전에 첫 단추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지만, 어설프게라도 1월 3일 도서관 첫 단추를 끼웠다.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부지런한 새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도서관에서 내가 앉을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책을 둘러보며 자리를 찾다가 창가 1인석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착도서 코너에서 읽고 싶었던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_이연]를 들고 자리로 이동할 때였다. 내 왼쪽 좌석에 앉은 그가 무언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는 게 보였다. 


'도서관에서 뭘 먹고 있는 거지? 이건 아니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려는데 그의 손에 들린 텀블러가 눈에 들어왔다. 첫 모습에 그를 판단한 나의 태도를 반성하며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냄새의 시작을 찾아 고개를 움직이다 보니 왼쪽에 앉은 그가 보였다. 


율무차.

내가 먼발치에서 보았던 오물거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율무차의 견과류였다. 

800ml는 족히 넘어 보이는 단단한 텀블러 안에 율무차를 담아 온 그는 틈틈이 뚜껑을 열어 율무차를 마셨다. 율무차를 얼마나 타 온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강하고 진한 율무의 향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도서관에서 율무차를 마셔도 되나' 

스스로 반문하면서도 율무차 향에 끌려 오랜만에 율무차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 가득 찼다. 겨울엔 율무차인 것을, 최근 몇 년 동안 율무차를 마신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결국엔 '먹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 부끄러웠다. 새해부터 기본욕구에 너무 충실한 기분이다. 


도서관에서 허용될 수 있는 냄새는 어디까지일까.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텀블러에 블랙커피를 담아왔다면 내 코끝 감각이 먼저 '아~좋다' 하고 감탄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율무차의 향을 맡고 '앗!' 당황한 내가 낯설었다.  

향(냄새)도 취향을 탄다. 나에게 한없이 사랑스러운 커피 향이 누군가에게는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오른쪽에 앉은 그녀의 테이블에는 텀블러와 함께 두유가 올려져 있었다. 환경을 사랑하는 그와 그녀 사이에 앉아 나는 책 대신 그들의 음료를 탐구했다. 율무차와 두유, 도서관인데 카페에 있는 기분이라니.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전화였다.

한참 재밌게 책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여보세요?"라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는 "예, 예, 예-- 예? 예-"하는 소리가 이어졌고,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간 사람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도서관 내부로 돌아왔다. 도서관의 자동문이 열림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 예 . 예 --"


첫 번째 "예예-"통화 이후, 두 번째 통화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도서관 내부에서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소곤소곤도 아닌 보통의 목소리로 통화가 이어졌고, 휴강인 줄 알았던 수업이 오늘 열린다는 사실을 관련도 없는 내가 알게 됐다. 통화하기 전 "잠시만요."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알았다. 


창밖으로 눈 같은 비, 비 같은 눈이 뒤섞여 내리고 있다. 

나폴나폴 움직이는 눈송이와 아래로 떨어지는 빗줄기에 마음을 실어 보내며 책이 아닌 경험으로 도서관예절을 배웠다 생각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는 책 넘기는 소리와 책을 찾는 발걸음소리, 책 냄새로만 가득 찼으면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문밖에서 음료를 마시고, 통화를 해도 늦지 않다. 

나부터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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