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미 내 배 위에서 잠들어있었다. 작은 몸이 내 숨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제야 나도 긴장이 풀렸다. 녀석만큼 나 역시 고단했다. 그대로 함께 잠들었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내게 큰 도전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동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대한민국의 여느 집에서나 애완동물 치다꺼리는 엄마의 몫이 되기 쉽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엄마의 안 된다는 말에 아무도 대거리를 못했다. 열 살 때쯤 아빠가 어디선가 강아지를 데려왔지만 엄마의 반대로 사흘을 못 넘기고 돌려보냈다.
엄마가 동식물을 안 들이는 것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두려웠다. 혹시라도 잘 돌보지 못해 집에서 무언가 죽어나갈까 봐. 키우지 않으면 적어도 그럴 염려는 없었다. 실제로 엄마는 화분 하나 잘 키우지 못했다.
반면 아빠는 낚시와 원예를 좋아하셨다. 화분도 아빠가 돌보면 살아나나 싶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난에서 꽃도 피었다. 하지만 대체로 바쁘셨다. 회식이다 뭐다 며칠 못 돌보면 시들해지고 곧이어 엄마 몫이 된다.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단독주택에서 한 해를 나며 꽤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난 엄마의 딸인 동시에 아빠의 딸이기도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