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얇은 빵 하나에 담긴 이야기
가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식전에 딱딱하고 길쭉한 막대 모양의 빵이 나오곤 하는데, 바로 그게 그리시니다. 솔직히 말해 특별히 맛있는 편은 아니라 굳이 손이 가지 않는 빵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빵 실기에는 이 빵이 포함되어 있고, 반죽을 약 38cm 길이로 늘려 42개를 일정한 크기로 만드는 게 관건이다. 하나라도 길이가 어긋나면 감점이 되기 때문에, 균일하게 늘리는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짧다고 해서 철판 위에서 억지로 잡아 늘리면 오븐에서 구워져 나올 때 앞부분이 들려 활처럼 휘어버린다. 반대로 양 끝을 너무 뾰족하게 빼도 좋은 모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42개를 연달아 같은 길이로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험장에서 얼마나 정신이 없을지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빵도 아닌데 왜 이런 품목이 포함되어 있는지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시니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다. 이 빵은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지역에서 17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진 전통 스틱 브레드로, 길게 뻗은 모양 때문에 ‘빵 막대’라는 별명도 있다. 가볍고 바삭한 식감이 특징인데, 그 기원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에 따르면, 소화 문제가 있던 토리노의 어린 왕자를 위해 의사가 더 소화가 잘되는 얇고 바삭한 빵을 만들도록 제빵사에게 의뢰했고, 그 결과 그리시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빵은 식어도 질기지 않고 보관도 용이해 빠르게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시니는 단순한 빵을 넘어 이탈리아 식문화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식전빵으로 기본 제공되었고, 올리브오일을 찍어 먹거나 프로슈토를 돌돌 말아 함께 먹는 방식도 널리 사랑받았다. 바삭한 식감 덕분에 와인과도 잘 어울려, 이탈리아에서는 언제든 곁에 두고 먹는 일상의 빵이 되었다. (어떤 이탈리아 식당에서 그리시니를 먹으면 추가 요금이 붙기도 한다.)
한국에는 2000년대 이후 서양식 베이커리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소개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대중화되면서 식전빵으로 그리시니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후 베이커리와 마켓에서도 간식용 스틱빵 형태로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허브, 바질, 치즈 등을 넣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종류도 많고, 끝부분에 초콜릿을 묻혀 대형 빼빼로처럼 즐기는 스타일도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설지만, 시험장에서 그리고 식탁 위에서 묘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젠가 레스토랑에서 다시 그리시니를 마주한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집어 들게 될 것 같다. 제빵사가 길게 밀어 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