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MY FOSTER HOME
거짓말 아니고 진짜,
난 내가 대한민국이 아닌 딴 나라에서 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제법 살아야 간다는 '유학'은 물론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여행이 아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조금은 오랫동안 머무는 것은 공부든 뭐든, 조금 사치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익숙한 곳이 아닌, 익숙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머무르는 이방인'이 되는 것은 철없게 낭만적으로 보였다.
돌이켜보니 고등학교 시절, 2000년대 초, 인문계 여고를 다니며 작가를 꿈꾸던 나의 숨은 베스트 프렌드는 그 누구도 아닌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야자를 끝내고 돌아와 금요일 날은 교회에 철야예배를 드리고 돌아오신 할머니와 아랫목에 누워 함께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거나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오신 시장 도나츠를 먹거나 한 기억이 많은데 한 번은 국제결혼을 한 여자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걸 함께 본 적이 있다.
“한국에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외국인이랑 결혼해 고생은 뭔 말이여. 그렇게 좋음 연애나 하고 결혼은 한국 사람이랑 혀.” 하시던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엔 내 나라에서도 힘든 잘 먹고 잘 살기, 머나먼 타국 땅에서 잘하고 있다고 세상 둘도 없는 조력자가 되시곤 내 자식들을 위해 내가 엄마로서 뿌리를 내리고 안정을 느껴야 아이들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현명하고 강한 나는 어디서든 살 수 있겠다고 하신 할머니.
2006년 6월 한국을 떠났고 2022년 6월 나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 무지로 왔고 오기로 버텼고 피땀으로 시간을 보낸 지 십오 년이 넘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어리고 약한 아시아 여자에서 자연분만으로 아이 셋을 낳고 주말, 밤낮 일해 가정을 지켜왔고 수영장과 거대한 땅이 달린 집을 샀고, 누구도 나에게 혹은 내 가족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언어와 경력, 지혜를 쌓았고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And you can always learn from anything and anyone.
And that’s best part of Canada, here they have anyone and everyone from everywhere.
이곳 캐나다에서 웨이트리스와 바텐더, 주방장으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지 않느냐 하는 말을 가끔 듣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살면서 내 나라 사람들에게 겪을 어려움이나 수모, 사기 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럼 사실 캐나다라는 내 뒷 배경이 바뀐것일뿐, 환경의 변화는 내 성장의 미묘한 차이일뿐, 별 것이 절대 아니다.
사람사는 일일뿐.
한국의 가족들, 친구들, 사회망, 내 고향, 내 꿈을 생각했을 때 잃은 것은 막대하고 지중하지만 한국을 떠나 살며 커진 나의 그릇을 생각했을 때 또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다.
Now I can put more on my plates.
Home is where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