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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사는 맛 25화

꽃을 사는 맛

by letitbe

꽃을 어지간히 좋아하긴 하는가 보다.

버스에서 결국 내린 것을 보면 말이다.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였다. 아직 3개의 정거장 정도는 남았는데 급하게 내렸다. 내 발길이 닿은 곳은 꽃이 잔뜩 실린 트럭이었다.

'어, 여기서 꽃을 파네. 예쁘네. 내릴까 말까. 여기서 내리면 집까지 몇 정거장은 걸어가야 하는데... 귀찮은데..' 그러면서도 결국 내 몸은 서둘러 내렸다.

꽃이 잔뜩 실린 트럭 안을 두리번거리면서 살짝 들떠서 꽃을 골랐다. 예뻐 보였다.

수더분하게 생긴 외모를 하신 나이가 있으신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셨다.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꽃보다는 붕어빵을 파시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셨다. 정리가 안된 수염이 있는 얼굴과 느린 말투로 아저씨는 "이 꽃도 향기가 좋고 예뻐요." 하셨다. 그러나 사장님의 권유보다는 요즘 내가 꽂혀 있는 꽃이 있다.


카모마일 티를 가끔 마시는데 카모마일을 만드는 꽃이라고 하는 마트리카리아 꽃 두 다발과 리시안셔스 한 다발을 샀다. 우리 집 식탁에 꽃을 꽃은 한 다발이고 두 다발은 아는 분께 봄날 꽃을 반짝 이벤트로 드릴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내 마음만 생각하면 생각지도 않게 누군가로부터 꽃을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하는 나 혼자만의 들뜬 마음이 꽃을 세 다발이나 사게 했다. 선물을 드리기도 전에 내 손에 가득 들려진 꽃다발 뭉치들로 벌써 나는 기분이 좋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길가에 핀 작은 풀꽃하나만 봐도 흐뭇한 일이니 말이다.

다행히도 내가 선물할 지인분들은 모두 꽃을 좋아하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내 손에는 꽃이 세 다발이나 됐다. 지나가는 길에 쇼윈도를 힐끗 쳐다보았다. 내 모습을 바라보자니 꽃 세 다발을 들고 지나가는데 든든하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니지만 꽃을 사는 여유가 있는 마음부자는 맞다. 아는 분께 이벤트로 꽃배달을 했고 생각지도 않은 꽃다발에 환하게 웃으시며 기뻐하셨다. 인증사진까지 남겨주셨다. 좋은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마치 큰일을 한 것처럼 살짝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 마음이 욕심을 낸 것은 딱 그만큼이었다.


선물은 특별한 날 받는 것도 좋지만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받는 마음은 또 다른 기쁨이 된다. 선물을 주는 마음은 상대가 기쁘면 주는 마음도 덩달아 기분 좋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식탁 위에 한아름 꽂힌 꽃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코를 대어 봤다. 은은한 꽃향기에 나도 슬쩍 미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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