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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Sep 14. 2021

춥다. 추워. 모든 것이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철없이 보내 버린 내가 너무 미워서~

아차해도 뉘우쳐도 모두가 지난 이야기~


 1988년 발표된 ‘봉선화 연정’으로 KBS가요대상을 수상한 현철 아저씨의 92년 곡이다. 제목은 ‘싫다. 싫어’다. 수세미 같은 헤어스타일, 엉덩이를 덥고도 남을 정도의 정장을 입고 최대한 절제된 동작으로 불렀던 노래.

 성격 상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거 하지 마세요. 위험해요.’라고 하면 꼭 위험에 처해봐야 다시는 안하는 사람들. 먹지 말라고 하면 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하는 사람들. 


그게 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신입사원 채용과 업무 인수인계 등의 핑계로 회사는 해를 넘겨 1월까지 내 등골을 쪽쪽 팔아먹었고 1월을 꽉 채우고 나서야 날 풀어줬다. 


‘자유’


시간은 온전히 내편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잠을 자고 싶으면 실컷 자고. 화요일 아침 11시. 지금당장 차를 몰고 나와 전라도의 맛집으로 떠날 수도 있었다. 돌아오기 피곤하면 근처 멋들어진 호텔 하나 잡아서 하룻밤 자고 올라와도 괜찮았다. 평일이니까 저렴한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돈(錢, money)’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 한 달, 반년으로 접어들자 통장의 잔고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급한 대로 평소 나를 든든하게 지켜줬던 은행을 찾아 대출을 신청했다. 


“호갱님, 대출이 어렵습니다.”(일러스트)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직장을 다닐 땐 베스트프렌드 같은 미소를 띠며 수 천 만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오 분 만에 쿨하게 만들어주던 그대들이 아닌가. 

 배신감이 들었다.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4대 보험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벌거벗고 도로 한 복판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진짜 사회를 만났다.

 어느 날 책을 쓰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책 쓰겠습니다. 책을 써서...”까지 말하는데 아버지는 마치 처음부터 내가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공무원해라. 늦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렇게 난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만끽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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