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하지 말고 일단 해
우리 집은 아침에 4번의 알람소리가 울린다.
나, 아내, 딸, 아들.
알람이 울리는 시간은 모두 다르지만 아침에 집을 나가는 시간은 비슷하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하나다. 혹시 볼일 보는 시간이 겹치면 낭패다. 그래서 아침에는 샤워나 머리 감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잘못하면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용변 급하다고 설마 옷에 거사를 치루지야 않겠지만 사람일이란 모를 일이다.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계엄령이 선포되는 마당에 용변을 지리는 정도야 애교다.
실제 요즘은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화장실 두 개가 절실하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러 가구가 한 개의 화장실을 같이 쓰는 집도 많았다. 지금은 1가구당 화장실이 2개 이상인 집도 많다. 혼자 살았다면 화장실 2개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식사 풍경도 그때와는 다르다. 나의 어머니는 새벽 4시 반에 밥과 국을 차려서 아침을 챙겨주셨다. 새벽반 학원에 가려면 집에서 새벽 5시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아침자율학습, 수업 끝나고 보충수업, 보충 끝나고 야자, 그리고 독서실.... 요즘 우리 집은 나만 아침을 먹는다.
그때는 만원 버스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공부를 했다.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는 나중문제였다. 대학 가서 뭐 해? 이런 한가로운 생각을 하고 있을 시대가 아니었다. 뭐라도 무대뽀정신으로 해야 했다. 나머지는 운명에 맡겼다. 얼마 전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잡생각 하지 말고 일단 해"
딸은 서운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어른도 마찬가지다) 긴장할 때는 긴장을 해야 한다. 평생 긴장하며 살 순 없겠지만 몰입도를 최강으로 올려야 할 때는 잡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잡생각은 길면 길수록 좋지 않다. 경험담이다. 방황은 최대한 짧게 해야 한다.
답을 모르겠을 때는 일단 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안 하면서 잡생각만 하면 제로지만 하면 확률이 높아진다. 올인해야 할 때는 올 인해야 한다. 연애도, 결혼도 비슷하다. 잡생각이 많으면 애도 못 낳는다. 몰입할 때는 몰입하고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저녁이 되면 식구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퇴근하자마자 지쳐 쓰러져 거실에 누워있고, 아이들은 책가방을 매고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띠띠띠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반갑다. 나의 식구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는구나. 나의 부모님도 내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이런 느낌 이셨을까?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매일 반갑다. 오늘 하루도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고생했다.
나의 제군들아, 오늘 하루도 잘 버텨주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