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지 Oct 11. 2022

너 이 일 하지 마라.

  1년 전에 면접을 본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1년 전 여름, 방송작가 구인게시판에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OO>프로그램에서 막내작가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뭘 잘 모르 열정만 넘치는 방송작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한 학기나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주제에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다. 일을 할 수 있으니 이력서를 보낸거라고 생각한 PD는 면접에서 다음주부터 일을 할 수 있느냐 물었다. "저 아직 18학점 남았는데요?"라는 나의 대답에 그도 웃고, 나도 웃으며 헤어졌었는데. 다행히 그 때 면접을 봤던 PD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력서를 남겨두었다가 빈 자리가 생기자 연락을 준 것이었다.


  어디 도망갈 데가 없는지 미친듯이 찾고 있던 내게 그 전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점점 흙빛이 되어가는 메인작가의 얼굴이 눈에 밟히긴 했지만 나부터 살아야 했다. 팀을 나가고 싶다고 하자 메인작가가 "PD한테는 내가 말해줄게."라고 했다. 잠시 후, 그와 PD가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나가라 그래!" 라는 말과 함께 PD가 사무실을 나갔다.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었으나 평소에도 편한 자리는 아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내가 옮길 팀의 막내작가가 일정이 급하다며 인수인계를 서둘렀다. 차마 근무중에 새 직장으로 인수인계를 받으러 갈 수 없어서 "늦은 저녁도 상관없나요? 7시쯤에나 될 것 같은데요."했더니 "7시가 뭐가 늦어요. 천천히 오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새 팀을 찾아갔는데 저녁 7시의 사무실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마치 오전 10시의 풍경 같았다.


  전임자는 빠르게 일에 대해 설명했다. PD, 조연출, 메인작가, 막내작가 이렇게 4명이 한 팀며 6개의 팀이 로테이션으로 방송을 제작한다. 5주 일하고 1주를 몰아서 쉬는 시스템이며, 방송을 제작하는 5주 동안은 휴일없이 출근한다. 주급은 30만원에 식대가 제공되고, 방송을 제작하는 5주동안 막내작가에게 택시비가 40만원까지 제공되지만 아마 부족할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택시비가 40만원이나 나오는데 부족하다고요?"

  그러자 전임자가 그게 뭐가 놀랄 일이냐는 표정으로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다들 퇴근하려면 멀었어요."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근하는 전임자에게 팀 사람들이 "오늘 일찍 들어가네."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와 내가 사무실을 나서던 시각은 밤 9시였다.


  세 번째 회사에서의 첫 아이템은 '실종'에 관한 것이었다. PD는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실종자 리스트를 던져주며 취재를 하라고 했다. 리스트를 받긴 했으나 막막했다. 한 학기에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들었던 신문방송학과의 어떤 강의에서도, 그리고 6개월이나 다녔던 방송작가 아카데미에서도 취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실종자 리스트의 연락처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프로그램 작가입니다. 혹시 실종된 가족분은 돌아오셨나요?"

  렇게 전화를 걸면 반응은 두 가지였다. "우린 방송국이랑 할 말 없어요!"하고 전화를 끊거나 듣는 사람조차 가슴이 찢어지게 흐느껴 울거나. 실종자 리스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나는 한 명도 섭외하지 못 했다. 전화를 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고, 흐느껴 우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다가는 나도 울었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질질 짜는 나를 메인작가 불렀다.

  "너 왜 울어? 방송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섭외전화하면서  울고 있으면 어떡해?"

  여전히 눈물을 그치지 못 하는 나에게 메인작가는 방송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다.

  "그 사람들 사정 딱하지. 그런데 우리는 그걸 방송으로 만들어서 이런 일이 다시 없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야. 작가가 울면 어떡해!"

  다 맞는 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식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통곡하는 사람에게 "저희랑 촬영 좀 해주세요."라는 말이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 섭외에 실패한 내게 경찰서에 전화를 해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중학생 실종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에게 사건경위를 취재하고 가족 연락처까지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담당형사를 찾았다. '제발 자리에 없어라... 없어라...'하고 그렇게 빌었건만 담당형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채 할 말이 정리되지 않은 채 통화연결에 성공해버린 나는 대뜸 "사건경위가 어떻게 돼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담당형사가 짜증을 냈다. "지금 바빠죽겠는데 사건경위는 왜 물어요?" 말문이 막힌 나는 어버버하다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메인작가가 물었다.

  "담당형사랑 통화한거야?"

  "네."

  "뭐래?"

  "... 아무 얘기도 못 들었어요."

  "뭐라고 물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메인작가가 담당형사 직통번호나 달라고 했다. 나에게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던 형사가 메인작가와 한 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듣고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메인작가의 화술은 정말 놀라웠다. 그게 바로 프로의 세계였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 깨달았다.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첫번째 회사와 PD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던 두번째 회사에서는 사회생활의 쓴맛을 맛보았을 뿐, 일을 배우지는 못 했다. 작가가 되겠다고 와놓고는 기본적인 취재도 못 한 채 울고만 있는 막내작가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5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다른 팀 막내작가들이 일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며 일을 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날도 있었고, 메인작가의 작업실과 PD의 편집실을 오가며 날밤을 새야 하는 날도 있었다. 전임자의 말대로 택시비 40만원은 부족했고, 막바지에는 회사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을 했다. 그러는동안 많이 혼났고, 많이 울었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드디어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방송을 마치고 집에서 쉬던 휴가 첫날 밤,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널 뽑긴 했는데... 넌 이 일이랑 안 맞는 것 같다. 너, 이 일 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