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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aumazein Mar 26. 2024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평소에 어떤 자리나 장소에서나 내가 늘 생각하는 태도의 모습이다.


우리 카페에는 대부분 매너가 좋고 서로 기분 좋게 일상 대화를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 단골들이 많은데, 가끔 어떤 사람은 정확하게 본인이 잘못 주문하고는 자기 실수를 직원이 잘못 알아들은 걸로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 물론 내가 헷갈렸거나 실수했을 때는 바로 사과하고 정정한다. 그런데 그게 아닐 때, "잘못한 게 아니면 손님한테 '죄송합니다'라는 말 하지 마세요."라는 건조하게 무심한 듯 내뱉는 사장의 말을 듣고 생각보다 여기에서 오래 일을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다. 일하면서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불편한 것들이 있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과 상충할 때 그렇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비매너를 볼 때 그렇지만, 또 반대로 과한 의전을 마주할 때도 나는 그렇다. 인간적인 호감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자연스럽게 지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게 과할 때는 거북하다.



공식 행사를 몇 번 진행하고 참여하면서 소위 말하는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 위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식순이나 내용 흐름 전체가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뒤바뀌게 될 때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런데 그것을 옆에서 그 사람을 '모시는' 공무원들이 '알아서 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렇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안쓰럽기도 했고, 그것을 관용적으로 허용하거나 오히려 알게 모르게 부추기는 사회 관념에 더 화가 났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우스웠던 건, 우산을 씌워주는 의전이었다. 뻔히 손도 있고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아닐 텐데, 자기 우산 하나를 자기가 못 드는 사람이 과연 어떤 무거운 일을 제대로 해낼까 하며 그 사람의 책임감이나 추진력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세상이 어떻거나 간에 내 나름은 웬만하면 모든 인간을 사랑하자는 홍익인간 정신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을 실천하며 살려고 한다. 그래서 누구 앞에서도 꿀리거나 나를 일부러 낮추지 않고, 누구 앞에서도 오만하거나 나를 일부러 높이지도 않는다. 나도 마음은 그렇지만 실상 행동은 생각과 일치 못할 때도 있는데, 나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역시 이런 사람은 멋지군!' 하며 나의 멋있게 살자는 모토에 힘을 보태준 한 청년이 있었다.



벌써 오래전이긴 하다. 마카오로 가족여행을 떠났었다. 온 가족이 함께해서 즐거웠던 추억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유독 여행을 다녀와서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상은, 그곳의 화려함, 삐까뻔쩍함과 동시에 그와 대조되는 삶, 거리의 풍경들, 사람들이었다.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는 생각보다 훨씬 더 휘황찬란했다. 단, 관광객들에게만.


그리고 잊히지 않는 한 청년. 첫날 호텔방에 도착했는데 슬리퍼가 없어서 복도에 청소하는 청년이 보이길래 그분께 슬리퍼를 요청했다. 청년은 내게 빠뜨려서 미안하다며 슬리퍼를 챙겨주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다시 부르더니 맑게 웃으며 미안해서 준다며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유쾌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메이크업 룸을 요청해 놓고 저녁에 돌아와 그 청년이 해놓은 청소를 보고 나는 뜻밖의 감탄을 다시 했다.  


급하게 나간다고 남편과 아이가 마구잡이로 벗어놓은 옷들이 세상 예쁘고 곱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그 정도는 다른 호텔에서도 해주니 그러려니 했는데, 화장실로 가보니 여기저기 빨아서 걸어놓은 수영복들은 차름히 만들어진 빨랫줄에 줄줄이 다시 걸려있었고, 한편에 잘 마르라고 워터슈즈들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물기가 흐를까 접어서 깔아놓은 하얀 수건까지.



아, 이건 뭔가. 내가 안 다녀봐서 몰랐던 고급 호텔의 남다른 서비스일까. 아니면 이 호텔 클리닝 가이드라인에는 그렇게까지 하라고 세세하게 지침이 나와있을까. 아니면 그날 애인과 데이트가 잡혀있어서 유독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날일까. 이유야 뭐든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디테일한 정성은 분명 누구의 시킴으로, 타의로 되는 건 아니었으리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가을의 마카오 여행에서 잊히지 않는 건 그 청년이다. 정확하게는 그 청년의 성실하면서도 유쾌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나를 다시 불러 세워 당당히, 그러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건네주던 초콜릿과 일하는 내내 룰루랄라 부르던 콧노래, 스스로 행복하고 충만한 순수함은 안내데스크에서 예쁜 얼굴로 짜증 가득하게 히스테릭한 호텔리어와 대조적이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서로 더 잘났다는 듯이 뽐내는 온갖 화려한 건물들과 눈 깜박하면 지갑이 비는 갖가지 즐길거리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마카오에서의 호캉스. 자본으로 누리려고 갔으면서도 돈의 유무로 나뉘는 극과 극의 대우를 받으며 즐거웠지만 뭔가 불편했던 그곳에서의 여행. 시간이 지난 뒤 내 기억에 남는 건, 진지하고 즐겁게 일하던 한 청년의 맑은 미소,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던 그의 미소였다.



과연, 자본은 노동을 착취했을까.

자본이 인간을 숙주 삼아 아무리 창궐하고 번식한다 해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태도까진 삼켜먹진 못하니, 이득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리는 뿌리 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내 삶의 태도 하나만은 스스로 선택하고 지키겠다 마음먹었다.



돈에 삶을 내어주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치라는 시대의 명령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기 힘을 동원하여 좋아하는 것을 남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 꼿꼿한 열정. (10)
(...) 상식과 원칙 없는 세상이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있는 대로, 열심히 사면 사는 대로, 이상해질 확률이 높지 뭔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51)
- 은유,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이 바뀌는 게 너무 더디 걸리니 내가 먼저 바뀌겠다는 오기일지도 모르고, 나를 억압하고 옭아매는 사회에서도 내 마음의 자유와 평온은 끝까지 지키겠다는 대차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건 내 삶의 한 가지 방향키가 되었고, 그즈음 알게 된 박완서 작가의 문장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도 이런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하나의 가치관으로 삼게 되었을까. 불편하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과 상충하는 것이라면 내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황현산 작가'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라고 했듯이 나는 나를 넘어서고 싶었다. 겉만 그런 체 하는 게 아니라 안팎으로 모두 변화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와의 만남이, 내가 나를 알아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생각은 나보다 강한 누군가에게 내가 억압당할까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두려운 마음대한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펼쳐보고자 한다.



번외 이야기 - 브런치 연재를 하며 느끼는 점

"연재 요일을 헷갈리다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 역시 글을 쓰게 하는 건 '마감기한'이 맞다.

글을 쓰는 능력은 어쨌거나 닥치고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채우는 것에서 출발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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